만추(晩秋)를 만끽하기 위해 주말만 되면 수많은 차량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시절이다. 주말에 다소 여유가 있으면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경기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에 있는 용문사를 찾아가보자. 그곳엔 천년의 세월을 버티어 온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다.용문사에는 일주문은 있으나 사천왕문이 없다. 은행나무가 천왕목(天王木)으로 자리 잡고 있어 사천왕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파를 들고 동쪽을 지키는 동방지국천왕(東方地國天王), 보검을 들고 남쪽을 지키는 남방증장천왕(南方增長天王), 나삭(羅索)을 들고 서쪽을 지키는 서방다목천왕(西方多目天王), 사리탑이나 은서(銀鼠)를 쥐고 북쪽을 지키는 북방다문천왕(北方多聞天王)의 힘을 망라해 은행나무 한그루가 정법을 수호하고 마귀 습격을 방지하는 것이다.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이 그의 스승인 대경 대사를 찾아와서 심었다는 전설, 경순왕의 맏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심었다는 전설,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자란 것이라는 전설 등을 미루어 볼 때, 천왕목의 나이는 천년을 훨씬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돼 있는 이 은행나무는 나이가 많은 만큼 키도 커서 우리나라의 나무 가운데 가장 큰 57m의 키를 자랑한다. 수관도 넓어 동쪽으로 14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2m, 북쪽으로 16m에 달하며 줄기의 가슴높이둘레는 11m나 된다. 주위의 모든 나무들보다 2배 이상 큰 탓에 벼락을 맞을 염려가 있어 90m 높이의 피뢰침을 단 철탑을 옆에 세웠다.
이 은행나무와 관련된 다른 전설도 여럿 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톱으로 이 은행나무를 자르려는 순간 톱 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하늘에서는 천둥이 쳤다고 한다. 또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어 이 사실을 알렸으며 조선시대 고종이 붕어했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다. 이러한 전설로 인해 신령스러운 나무로 인식돼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세종 때에는 정3품 벼슬인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암수 딴그루이다. 그래서 암나무와 수나무가 서로 바라보이는 곳에 자라고 있어야 암나무에 열매가 맺는다고 전한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암나무로서 6가마 이상의 은행을 수확하곤 한다. 은행은 알을 감싸고 있는 노랗고 말랑말랑한 육질의 종의(種衣) 때문에 악취가 난다.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방충 효과가 있는 육질의 옷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은행잎에는 진코플라본 글리코사이드라고 하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고혈압, 심장질환 등 성인병 예방치료제로 이용되며 은행에는 빌로볼과 진콜산 등의 성분이 있어 폐결핵, 천식, 오줌소태 등의 치료제로 이용된다.
오래된 은행나무의 특징으로 유주(乳柱)가 있다. 대개 줄기에서 자란 큰 가지에 여인의 유방처럼 밑으로 늘어진 혹이 달리는데 아이를 낳고 젖이 잘 나오지 않은 출산부가 치성을 드리면 젖을 나오게 해준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요즘 용문면은 5개년 계획으로 은행나무 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에서 종자를 채취하거나 삽수를 채취하고 접붙이기를 실시하는 등 은행나무 묘목 2만 여 그루를 육성 이식했다. 앞으로 은행을 가공해 다양한 제품을 생산·판매할 계획이다.
용문사에 가려면 아침 일찍 가야 한다. 오후가 되면 홍천 가는 6번 국도에서 용문사로 이어지는 331번 지방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이 된다.
임 주 훈 임업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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