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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 남 해/추수끝난 다랭이논은 아직 가을을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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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 남 해/추수끝난 다랭이논은 아직 가을을 기억하겠지

입력
200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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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너무 짧다. '4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라는 말은 이제 겸연쩍다. 가는 가을이 아쉽지만 어김없이 겨울은 진군한다. 가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고, 겨울이라고 부르기엔 이른 요즘이다. 적당한 표현은 없을까. 겨울언저리는 어떨까.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준비하는 이 시기, 아직은 따뜻함이 남아있는 남도로 향한다. 경남 남해가 목적지다. 경남 하동군과 사천시로 연결되는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큰 섬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남해를 섬으로 부르지 않는다. 제주도, 거제도, 울릉도 모두 섬 도(島)자를 쓰지만 남해도라는 말은 듣기 힘든다. 아마도 국토의 남북을 내달리는 2개의 큰 도로인 3번과 19번 국도의 시발점이어서가 아닐까.

3번 국도(555.2㎞)는 남해군 미조면에서 사천-진주-거창-음성-성남-서울-의정부를 거쳐 평안북도 초산군까지 이어진다. 19번 국도(436.1㎞)는 남해군 미조면에서 하동-남원-구례-충주-영동을 거쳐 강원 원주까지 연결된다. 19번 국도는 남해대교를, 3번 국도는 최근 개통한 창선-삼천포대교를 따라 달린다.

남해에는 가을 끝, 겨울 시작을 알리는 세가지 전령이 있다. 유자, 마늘, 그리고 물메기다. 모든 꽃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을 즈음 이들은 모습을 드러낸다. 남해로의 여정. 독특한 체험을 경험하는 색다른 여행이다.

유자향기가 여정을 시샘하고

남해여행은 향기로 시작한다. 한때 동양 최대 규모의 현수교였던 남해대교를 지나면 향긋한 유자향이 코를 자극한다. 유자는 11월 중순부터 한달 가량 열매를 맺는다. 주민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 시기에는 섬 전체에 유자향이 진동한다.

남해 유자는 몇 년 전만 해도 '대학나무'로 불렸다. 유자나무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교육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타 지역에서 탱자와 접을 붙인 유자 개량종을 개발,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개량종 유자는 심은 지 5년이면 열매를 맺지만 남해 유자는 15년을 기다려야 한다. 당연히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유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남해 유자의 우월성 때문이다. 개량종에 비해 껍질이 단단하고 투박하게 생겼지만 단 맛이 강하고 신 맛이 적으며 향이 강하다. 열매를 맺은 뒤 10년이면 더 이상 수확할 수 없는 타 지역 유자와는 달리 나무가 죽을 때까지 수확할 수 있다. 유자속을 비워낸 뒤 설탕에 절인 유자청은 시중에서 30% 가량 비싸게 거래된다. 남해유자의 명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햇살에 반사되는 파란 마늘 바다

이 즈음 남해의 논은 언뜻 볼 때 모심기로 한창인 듯 하다. 섬 전체가 온통 파릇파릇하다. 마늘순이다. 지난 달 심은 마늘이 이제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은 남해의 겨울언저리를 구경할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곳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앞 계단식 논이 장관을 이룬다. 앞에 보이는 바다는 태평양이다.

논 하나의 규모는 겨우 5∼6평 남짓. 100계단 이상 층층이 이뤄진 모습이 아찔하다. 밭 갈던 소가 한눈 팔면 절벽아래로 떨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생존을 위해 한 뼘의 논이라도 더 가꿔내려는 인간의 몸부림이 만들어낸 걸작이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설흘산이 버티고 있다.

논 위에 둘러놓은 비닐을 뚫고 올라온 파란 마늘순이 햇살에 반사돼 눈이 부신다. 겨우내 추위와 해풍을 이기고 내년 봄에는 어김없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절벽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바위가 있다. 감성돔을 낚으려는 강태공들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다랭이마을에는 암수바위로 불리는 2개의 묘한 돌이 있다. 높이 5.9m의 수바위는 남자의 성기모양을 닮았다. 국내에서도 가장 잘 생긴 돌로 소문이 나있다. 바로 옆에 누워있는 암바위(3.9m)는 애를 밴 어머니의 형상이다. 자식을 원하는 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숙취 주당들의 희망, 물메기

바다에도 전령이 기다리고 있다. 상주면 금포마을로 향한다. 이 곳에서는 지금 물메기가 제철을 맞았다. 물메기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하는 입 큰 물고기다. 비린내와 기름기가 없어 숙취로 고생하는 주당들의 속풀이 해장국으로 큰 인기다. 무를 썰어 넣어 끓여내 국물 맛이 담백하다. 회무침이나 찜으로도 먹을 수 있다.

해마다 이맘때 시작, 1월까지 잡힌다. 해장국 1그릇에 6,000원선. 비싼 가격은 아니지만 1년 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귀하다.

남해는 지금 계절과 계절사이에서 독특한 정취를 더해가고 있다.

/남해=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가는 길

대진 고속도로 진주J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사천IC에서 나온 뒤 3번 국도를 따라 오면 최근 개통한 창선-삼천포대교와 만난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다. 남해대교로 가려면 사천IC를 지나 하동IC를 빠져 나온 뒤 19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서울에서 오전 8시부터 하루 6차례 고속버스가 운행한다. 소요시간은 4시간30분 정도. 부산에서는 20∼30분 간격으로 대중교통이 오간다.

머물 곳

특급호텔급은 없지만 깨끗한 장급 여관이 많다. 지금은 성수기도 아니라서 방값도 싸다. 최근 프로축구, 야구팀의 동계 전지훈련장으로 각광받는 남면 스포츠파크 호텔(055-862-8811)은 객실 95개를 보유하고 있다. 가족휴양촌(863-0548), 남해 유스호스텔(867-4848), 마린원더스(862-8880), 남해 편백자연휴양림(867-7881), 하얏트모텔(863-1296), 갯마을비치텔(863-5035) 등이 있다. 창선-삼천포대교의 야경을 구경하고 싶다면 대교를 건너 사천시 해안도로변에 위치한 삼천포해상관광호텔(055-832-3004)를 찾으면 된다. 안재욱과 이은주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하늘정원'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먹거리

섬이다 보니 아무래도 생선을 재료로 한 음식이 많다. 남해의 대표음식은 물메기와 갈치회. 물메기는 원조공주식당(867-6728)이, 갈치회는 미미식당(867-6797)이 유명하다. 해변식당(862-2838), 대교횟집(863-2842) 등 곳곳에 횟집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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