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5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법안'을 거부한 이유를 "국법질서 운영의 나쁜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행정부 수반으로서 행정부에 속해있는 검찰의 수사권과 소추권을 지켜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국회의 입법권에 제동을 걸었다는 뜻이다.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자체가 오히려'나쁜 선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데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재의 요구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일축했다. 거부권 행사가 법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이다.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언뜻 법리적인 주장이 뼈대를 이룬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거부권 행사의 정치적 파장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음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선 노 대통령은 거부권 행사의 정치적 목적이 "국회 다수당의 횡포로부터 검찰권을 보호한다"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장외투쟁과 의사거부, 그에 따른 국정혼란이 예상되지만 이에 굴복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노 대통령은 "걸핏하면 탄핵을 들먹이고 마침내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며 한나라당을 비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 내년도 예산안, 한·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의 국회 처리가 시급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노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국회 보이콧과 장외투쟁이 길어지면 결국 한나라당이 국정마비의 원인 제공자로 여론의 지탄을 받게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는 내년 총선을 의식한 기세 싸움의 성격도 담겨 있다. 또 노 대통령이 검찰에 힘을 실어준 것에는 현재 진행중인 대선자금 수사를 검찰의 '소신대로'하라는 중요한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검찰 수사가 끝난 뒤 정부가 특검법을 제출하겠다"고 다소 돌출적인 제안을 한 것은 일단 거부권 행사가 자신에 대한 비리수사 회피로 비쳐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검찰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특검법이 제출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오해도 있었으나 청와대측은 나중에 '검찰 수사가 미진할 경우'라는 단서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검찰수사의 미진함을 누가 판단할 것이냐는 논란 때문에 이 같은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측근비리에 대한 특검은 실시되지 않을 공산도 크다. 따라서 이 구상엔 측근비리도 반드시 짚고 가겠다는 의지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국민을 향한 '정치적 제스처'의 성격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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