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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누구를 위한 가위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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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전용관]누구를 위한 가위질인가

입력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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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성인전용관'에서 일주일치 '일용할 에로 양식'을 얻어갔던 독자가 혹시라도 계셨다면, 오늘은 조금 실망하실 것 같다. 오늘은 성적인 얘기가 아니다. 대신 좀더 포괄적이며 이 코너 이름에 부합하는 내용이 될 것 같다. 과연 '성인'이라는 게 뭘까? '성인전용관'이라 할 때, 그 성인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실제적으로는 한 군데도 없지만 법적으로는 존재 가능한 '제한상영관', 즉 '등급외전용관'에서 '등급외'에 해당하는 영화와 그 영화를 볼(만약에 그런 극장이 생긴다면) 관객들은 과연 어떤 인간일까? 등급외 인간? 별 사소한 문제로 낭비하는 것 같지만, 이게 꽤나 심각하다. 특히 관객의 권리에 관련될 때는 더욱 더.21일 개봉한 '킬빌'(사진)은, 이미 보도됐듯 12초를 삭제해서 18세 이용가 등급을 받은 버전이다. 그 12초를 잘라냈다고 해서, 그 영화의 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타란티노 특유의 폭력 액션 미학이 영화 전체를 망칠 만큼 심각한 손상을 입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건, 솔직히 말하면 그냥 기분이 나쁜 상황이며, 원효대사가 모르고 마셨던 구정물 같은 거다. 모를 때는 갈증을 해소시켜 준 시원한 물이었지만,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라는 걸 알고나면 결국은 토하게 된다. 총 4 장면에 걸쳐 잘라낸 12초는 그래서 불쾌하다. 얼마전 만난 영화감독은 '킬빌'이 조금 잘렸다고 그러자 "에이, 꼭 가서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싫어지네. 나중에 DVD 원판 구해서 봐야지" 하며 꽤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잘린 걸 알고서도 그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멍청한 관객은, 내 상식에서는 없다.

현행법 상으로 등급을 받지 못한 영화는 일반 극장에서 상영하지 못하고 제한상영관에서만 틀도록 되어 있다. 제한 상영관은 등급을 받지 못한 영화들만을 틀어야 하니, 만약 그런 극장이 생기면 영등위는 제한상영관을 위해 매달 한두 편의 영화엔 등급을 내줘선 안 된다. 억지라고? 아니다. 그래야 제한상영관 극장주가 먹고 산다. 외국의 아트하우스처럼 극장 자체 심의를 통해 '감각의 제국' 같은 영화를 삭제 없이 매주 심야 프로그램으로 틀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혹시나 대형 멀티플렉스에서 작은 관 하나 정도는 제한상영관으로 지정하려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법적으로 제한상영관은 다른 건물 시설과 함께 입주할 수 없다.

하지만 '킬빌'이 제기하는 문제는 어쩌면 감정적인 차원이다. 영등위의 어떤 관계자는 "성인이라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그 영화를 미리 보고 그런 판단을 내린 그 사람은, 그럼 성인을 넘어 초인의 경지일까? 그러면 영등위는 초인들이 모여있는 '젠틀맨리그' 같은 곳일까?

그 초인들이 인간 세계를 굽어보고 볼 수 있는 장면과 봐서는 안 될 장면을 골라주는 한, 우린 성인은커녕 이마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관객일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타란티노에게 미안하다. 꽤 공들여 찍은 장면일 텐데…. 한국의 초인들은 그 장면을 인간 세계에 유포시킬 수 없단다.

/김형석·월간스크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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