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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만월대도 秋草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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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만월대도 秋草로다

입력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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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행정수도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한껏 달아올랐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걸린 사안이므로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공약의 하나였다는 이유만으로 밀어붙이기엔 과중한 주제다. 노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가 모두 이 계획을 찬성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선열기 속에 이 공약을 이성적으로 검증할 기회와 정보를 갖지 못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사안이며, 국민투표 제의가 나오는 것도 자연스럽다.정부가 행정수도 건설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 정부안을 보면 인구 50만 명의 행정수도에는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도 들어선다. 사실상의 천도(遷都)다. 내년 1월 최종안을 마련하고 상반기에 복수 후보지를 선정한 뒤, 하반기에 확정할 계획이다. 서두름 자체가 꼼꼼한 검증의 필요성을 반증한다.

정부는 일본과 브라질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 국회에서 천도를 결의하고도 지금껏 망설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신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브라질은 1960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신도시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옮겼다. 브라질리아의 예정인구는 우리처럼 50만 명이었으나 200만 명으로 불어났다. 예상치 못했던 대도시가 태어났고 엄청난 인플레를 초래했다.

수도는 창연한 문화유적 가운데 자리잡는 것이 국격(國格)을 높이는 길이다. 오래 된 건물이 없는 도시는 과거를 갖지 않은 인간과 같다. 베이징과 도쿄로 연결되는 서울은 역사적 상징성과 지명도를 지닌 고도다. 일본이 인구과밀과 지역경제 정체, 생활의 질 저하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도쿄를 떠나지 않는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우리는 지난 40년간 압축성장한 대신 개발독재로 인해 정서적 환경이 척박해져 있다. 600년 고도를 떠나 번쩍거리는 신도시로 천도한다면 대외적으로 신흥 경제국가 인상, 졸부 이미지만 주는 것은 아닌가. 신행정수도를 위해 국제공항을 새로 건설할 것인가 등에도 신경이 쓰인다.

원로학자 74명이 '서울 인구 50만명을 줄이려고 45조원을 쓰는가' 하며 수도이전 반대 성명서를 냈다. 반면 지방분권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는 조속 이전을 촉구하는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은 반대의원 항의방문과 총선낙선 운동 등에 나설 계획이어서 찬반세력 간 갈등도 우려된다.

천도는 신중해야 한다. 태조 이성계는 권력과 국가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천도 계획을 세웠다. 그는 음양산정도감이라는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정도전 하륜 등 많은 신하의 토론을 경청했다. 후보지인 공주 계룡산을 친히 답사하고, 1년 반 뒤에는 다시 한양(서울)을 시찰한 후 천도를 단행했다. 성미 급한 무인임을 감안하면 그의 신중함이 경탄스럽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천도가 지닌 함의와 통일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민심회복 차원에서 행정수도를 충남으로 이전하는 문제가 진지하게 거론되었다. 하지만 민족통일을 염두에 둔 진취적인 계획이 아니었고, 남녘의 궁벽한 지역이었다는 점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여 좌절되고 말았다.

정부는 전통관습에 따라 후보지를 선정할 때 풍수지리적 여건도 고려한다고 한다. 풍수 권위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통일 뒤의 수도는 개성이 적지라고 밝힌 바 있다. 개성을 통일국가의 영원한 수도로 여긴 것이 아니라, 남북의 체통을 존중하고 풍수지리상 지기(地氣)가 되살아나는 땅이었기 때문이다. 공감 가는 제안이다. 지금은 통일과 그 후의 새로운 한반도 구상에 힘을 쏟을 때이지, 충청권으로 섣불리 천도할 때가 아니다.

천도 후 개성의 고려 왕궁 터에서 쓸쓸함을 노래한 원천석의 옛시조를 떠올려 본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계워 하노라>

박 래 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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