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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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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입력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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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시인 김수영은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를 이렇게 시작했지만 김수영만 그랬던 건 아니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 '공중 전화를 너무 오래 한다는 이유로' 살인이 저질러졌고, 지나가는 깡패들은 얼굴도 아닌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일 깎는 데 써야 할 칼로 사람의 배를 찌르기도 했다.

'매트릭스3―레볼루션'의 결말을 신문에서 미리 알려주어 영화 관람의 기쁨이 상실됐다며 관람료와 아까운 시간을 배상하라는 사람들, '올드 보이'의 두 사내의 비밀이 근친상간과 관련이 있다는 정보를 누설한 자(?)에 대해 빗발치는 항의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 그리고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는 바람에 111분짜리 '킬빌'을 12초 잘라서 개봉하자 영상물등급위원회 위원장에게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를 데이트의 소품이나 시간 보내기 오락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조그맣고, 사소한 일에 분노하는 사람들이다.

거대한 것이 사소한 것의 합집합이라면 사소한 것에 분노하는 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사소한 것으로 촉발된 화를 역시 사소한 방법으로 대응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다. '레볼루션'이 재미없게 느껴졌던 게 정말 '네오가 스미스를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물리친다'는 '스포일러' 때문일까? '올드보이'의 근친상간을 이야기 하는 게 죄라는 생각은 영화사의 마케팅(배우, 스태프가 비밀서약서를 썼다) 방식에 너무 동조한 결과는 아닐까? '킬빌'의 수입사가 스스로 12초를 삭제하지 않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는 방식은 과연 불가능했을까? 이런 고민도 해볼 만하다.

영화 '앵거 매니지먼트'에서처럼 분노가 치밀 때 진정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우∼" "싸∼"하는 단순한 호흡 조절이 아니다.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물론 그것을 찾다 보면 어디선가 논리가 막혀 버리는 자신에게 또 화가 더 날 수 있다. 그런 자신이 느껴질 때는 이렇게 김수영처럼 이렇게 말해 보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자기 모멸의 화분에서 자존의 희망이 싹트는 법이니까.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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