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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희망이고 분신이죠"/타이틀 5,000여편 수집 문종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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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희망이고 분신이죠"/타이틀 5,000여편 수집 문종현 씨

입력
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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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수집가로 유명한 문종현(35)씨. 그는 DVD 마니아뿐만 아니라 제작사에서도 유명한 수집가로 통한다. "DVD 5,000편, LD 1,000장, LP 10만장…. 이쯤 돼야 마니아죠."서울 장위동의 반지하 집에 들어서니 대뜸 문 앞에서 2m 가까운 털북숭이 거인이 반긴다. 애니메이션 '몬스터 주식회사'에 등장한 '셜리' 인형이다. 국내에 3개가 들어와 2개는 극장에 놓여 있으며 개인으로는 유일하게 문씨가 소유하고 있다. 워낙 영화를 좋아하고 DVD뿐만 아니라 영화 관련 용품을 모으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영화배급사인 브에나비스타가 특별히 선물했다.

사방을 둘러보니 한 쪽 벽이 온통 DVD로 가득하다. 놀랄 겨를도 없이 문씨가 손을 잡고 다른 방으로 데려간다. 그가 DVD를 보는 감상실이다. 그 방 역시 한 쪽 벽면이 DVD와 레이저 디스크(LD)로 빈 틈이 없다. 무려 5,000여 편의 DVD와 1,000여 편의 LD가 꽂혀 있었다. "건너편 방에는 10만 장의 레코드판이 들어 있습니다." 부인 정은경씨 역시 서울 회현동에서 음반점을 운영하는 LP수집가. 박물관을 차려도 될 성 싶다.

더 놀라운 것은 감상실을 가득 메운 웅장한 홈시어터 장비들. 15대의 스피커와 스피커 한 대마다 각각 연결된 10여 대의 앰프, DVD플레이어, LD플레이어, 홈시어터용 프로젝터가 가득 들어차 있다. 왜 이렇게 스피커가 많을까. "들어보시면 알아요." 문씨가 전쟁영화 '진주만' DVD를 플레이어에 넣고 볼륨을 높였다. 순간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요란한 굉음이 방 안을 울렸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엄청난 음량에 바람이 일어 옷깃이 떨릴 정도였고, 마치 누가 빗질해주는 것처럼 소리가 머리카락 사이를 훑고 지나간다. 극장에서도 못해본 경험이었다. "이래서 1층으로 못 올라갑니다, 하하하."

한동안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문씨가 엄청난 장비에 대한 내력을 들려줬다. "좋아하는 작품을 좋은 화질과 좋은 소리로 보고 듣고 싶어서 장비에 욕심을 부렸죠. 그동안 집 한 채 값을 장비에 쏟아부었어요."

그는 요즘은 이 장비로 돈을 벌고 있다. 올해초 드림테크라는 1인 회사를 창업하고 외국에는 많이 있지만 국내에는 유일한 DVD타이틀 사전 품질 점검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파라마운트, 베어엔터테인먼트, 엔터원, 대원C& A홀딩스 등 제작사들과 계약을 맺고 DVD타이틀이 출시되기 몇 개월 전에 먼저 보고 문제점을 파악해 보고서를 보내준다. 1997년부터 아르바이트로 했으나 이제는 아예 직업이 됐다.

문씨의 수집벽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이텔 AV동호회에서 활동하면서 LD에 관심을 갖고 모으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DVD까지 이어졌다. 적지 않은 돈이 들었을 듯 싶어 사업을 하기 전에는 어떻게 돈을 마련했는지 물어봤다. "빵을 만들었어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이 너무 어려워 12살 때 제과점에 취직했지요."

그렇게 학교도 못가고 빵 만들기 24년. 중, 고교 검정고시 과정을 거쳐 일본과 스위스의 제과학교에 유학까지 다녀온 그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제빵 기술자이기도 하다. 이름을 알 만한 제과점은 모두 그가 한 번씩 거쳤으며 지금도 제과업계에서 초빙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배 고프고 힘들어도 영화는 봤어요. 유일한 위안이자 희망이었거든요."

그의 수집벽은 독특하다. 소장 가치가 높은 타이틀 위주로만 모으는 것. 그래서 2, 3개월마다 약 500달러어치의 DVD를 해외에 주문한다. 같은 작품이라도 수량이 제한된 한정판이나, 패키지와 내용에 공을 들인 소장판을 주로 사들인다. 국내 영화 DVD는 문씨의 명성을 아는 제작사들이 대부분 기증한다.

그의 목표는 소극장을 갖는 것이다. 혼자 보고 즐길 게 아니라 그동안 힘들게 모아온 수집품들을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다. "아무리 힘들어도 노력하면 되더라구요.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겠죠." 그의 이름이 걸린 소극장을 상상해보며 늦은 밤, 그 집을 나섰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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