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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클린턴의 "멀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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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클린턴의 "멀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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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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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우리나라를 다녀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만큼 재임중에도 골프에 열광적이었던 인물도 드물다. 골프에 관한 일화도 숱하게 전해진다. 1994년 8월 그의 생일에 있은 기자회견에서 클린턴은 당장 이루고 싶은 3가지 소원을 말해달라는 질문을 받는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클린턴은 범죄 관련 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원하고 워싱턴 정가 사람들의 교양수준이 더 높아지길 바란다고 한 뒤 느닷없이 골프 얘기를 꺼냈다. "마지막으로 내 나이 50이 되기 전에 70대 타수(아마추어로서는 매우 잘 치는 수준)를 기록하고 싶습니다." 참석자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했지만 클린턴은 이 말을 번복하지 않았다.클린턴은 실제로 '70대 타수'가 소원일 만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골프에 몰입했다. '지퍼 스캔들'의 여파로 탄핵이 거론될 때도 대중의 눈을 피해 군 소유 골프장에서 좋은 스코어를 기원하며 골프채를 휘둘렀다. 그뿐이 아니다. 엘 고어가 2000년 조지 W 부시와의 대통령 선거전에서 혈전을 벌이고 있을 때도 유세장보다 골프장을 더 자주 출입했다. 그리곤 "내가 유세장에 있지 않고 여기서 공을 친다는 것이 믿을 수가 없다.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는데…."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다.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기간 중 최소 400번 이상은 골프장을 출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골프에 홀렸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법한 클린턴이지만 정작 그가 늘 갈망했던 필드에서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많이 알려진 얘기지만 클린턴은 정상적인 플레이보다는 '멀리건(미스 샷은 무효로 하고 볼을 다시 한번 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클린턴의 멀리건은 독특했다. 멀리건은 우선적으로 상대의 양해를 얻는 것이 기본 매너지만, 클린턴은 동반자에게 묻지도 않고 두번 세번 샷을 날렸다. 그리곤 스스럼없이 가장 잘 친 샷을 스코어카드에 적었다. 때문에 그의 스코어카드에 적힌 점수는 아무도 믿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의 플레이가 끝나면 점수 대신 "오늘은 멀리건을 몇번 썼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클린턴의 골프는 급기야 정치적 다툼의 소재로까지 등장한다. 그의 두번째 대선유세에서 공화당측이 클린턴의 골프행태를 들어 정직성과 신뢰도가 낙제점이라고 공격하고 나서 혼쭐이 난 일이 있다.

골프에서의 신용불량은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의 신뢰도를 다소 떨어뜨리고 동반자들을 불쾌하게 하는 선에서 매듭될 수도 있다. 신용불량이 본업으로까지 이어지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금융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면서 경제 전반에 충격파를 던지고 있지만, 아직은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 없는 선을 넘어서지는 않았다. 그것 보다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악성 신용불량상태에 처해 있는 상황은 매우 위험하고 무섭다. 우리 일상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정부라는 존재가 그렇고, 비자금에 짓눌려 있는 정치쪽은 신용 회복이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한술 더 떠 이들 신용불량자끼리 서로 못 믿겠다고 목청을 높이는 모습은 저질 코미디다.

어쩔 수 없이 신용불량자들을 상전으로 모시고 있는 국민은 늘 억울하고 불안하다. 굳이 예를 들 필요도 없이 곳곳에서 지루할 만큼 반복되고 있는 혼돈과 혼란은 정계와 관변의 '양치기 소년'들이 나라 다스림의 맨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젠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신용불량자 리스트를 만들 때가 됐다. 그후 금융신용불량자처럼 이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퇴출시키는 절차도 반드시 필요하다.

김 동 영 체육부장dy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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