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나라의 살림을 다루는 대장성의 관료들과 술장수 사이에 경기 논쟁이 붙은 일이 있었다. 대장성 관료들이야 일본의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을 경제문제에 매달린 전문가들이고 술장수들이야 경제문제보다는 술의 제조나 마케팅에 생애를 걸고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당연히 관료들이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런데 결과는 술장수들의 판정승으로 끝을 맺었다. 거리 경제학(Street Economics)의 파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화장품 장수 역시 실물경기 판단에 있어서 나름대로의 정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화장이 짙어지면 호경기, 옅어지면 불경기라는 것이다. 2차 대전이라는 어려운 기간을 배경으로 한 '카사블랑카'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잉그릿드 버그만의 엷은 화장과 전후 호황기에 인기를 누린 오드리 헵번의 눈과 눈썹이 딱 불거지는 짙은 화장이 그 대표적인 예라는 것이다. 옷장수들 역시 만만치 않다. 여성복 어깨에 들어가는 부풀리기 솜이 커지면 호경기, 그렇지 않으면 불경기라는 것이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거리의 경기 지표는 다양하다. 남대문 시장 환경 미화원에 의하면 쓰레기 배출량을 보는데, 평소 리어카 5대 분이 평균이라면 불경기에는 그 반 정도로 줄어든다고 한다. 광화문 사거리 쓰레기 통 속의 담배꽁초 길이를 가지고 장초가 많으면 호경기, 필터 가까이까지 태운 꽁초가 많으면 불경기라는 설도 있다.
뭐니뭐니해도 거리 경제학자들의 전통적 지표의 대상은 여성들이다. 의상 심리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화려한 색상의 옷은 경기가 좋아지는 징조라는 것인데 최근 빨간 옷의 유행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반면 치마의 길이에 관해서는 미니 스커트의 유행이 불경기와 관계가 있다는 것인데, 올 봄에 시작된 미니스커트 바람이 아직 진행중이라는 얘기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미국에서 치마길이 이론(헴 라인 이론)이 처음 나왔을 때는 미니 스커트가 호황의 지표였던 것이 최근에는 거꾸로 적용되고 있는데 이론 자체가 복고풍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요 소재 가격의 상승은 기업이 향후 수요 증가를 예측하여 원자재의 재고를 늘리기 시작했다는 징조로 볼 수 있는데, 최근의 국제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전력 수요 역시 기업의 조업도 및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산업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중 산업용 전력 사용량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1% 늘었다는 소식이다.
아직은 아랫목(수출) 경기가 윗목(내수)에 이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결론이다. 그러나 증시든 경기든 몸으로 느껴질 만큼 좋아진 뒤는 이미 버스 떠난 뒤라는 것이 항상 아이러니이긴 하다.
/제일투자증권 투신법인 리서치팀장 hunter@cjcyb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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