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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이기는 기업/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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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이기는 기업/태평양

입력
2003.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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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위기 이후 국내 경기가 최악의 경기 침체상황을 맞고 있으나 특화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불황의 위기를 극복하며 호황을 누리는 기업이 있다. 어려운 기업 환경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공 비결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첫째는 브랜드, 둘째도 브랜드, 셋째 역시 브랜드….

내로라하는 업체들의 올 한해 매출이 지난해 대비 30∼40%씩 주저앉을 정도로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화장품시장에서 매출 9.0%, 순이익 14.8% 성장에 도전하는 (주)태평양 서경배 사장이 말하는 성공 비결이다.

'브랜드 경영'은 중소기업들조차 너나 없이 도입하고 있어 기업경영의 기본기로 통한다. 그렇다 보니 요즘 같은 내수불황기에 태평양의 선전을 브랜드 경영만으로 설명하기엔 어딘지 부족해 보일 수밖에 없다. 경쟁사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노하우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서 사장은 브랜드밖에 없단다.

브랜드 사랑, 이쯤은 돼야

유통·화장품업계에서는 최근 서울시내 유명 백화점에서 태평양이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택한 '엽기' 영업 방식이 화제다. 한 귀부인이 태평양의 설화수를 대량으로 주문했다가 보기좋게 딱지를 맞은 것. 한병에 십수만원에서 수십만원씩하는 제품을 수십병 사겠다는 고마운 고객이지만 자칫 브랜드의 이미지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 태평양의 고집이었다.

"최고급 브랜드 설화수를 대량 판매하기 시작하면 당장 매출이 뛸지는 몰라도 브랜드 이미지는 급속히 추락한다"는 것이 당시 판매 거부의 변이었다. 물론 그 손님도 처음에는 "본사와 백화점에 항의하겠다"며 맞섰지만 태평양 판매사원의 말을 듣고 이내 꼬리를 내렸다.

태평양 전직원의 희망 전보부서 0순위도 브랜드를 관리하는 마케팅팀. 다른 부서는 마케팅팀의 지원군이라는 데 이의를 내놓을 태평양맨이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업무량도 많다. 서 사장은 "불황기는 고객이 전에 없이 신중하게 물건을 구입하는 시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기업은 시장 속을 꼼꼼히 들여봐야 하고, 특히 브랜드 매니저는 시장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 태평양 마케팅팀 사무실에 빈 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태평양 김형길 부장은 "10년 넘게 브랜드 관리에 사운을 걸어왔다"며 "아모레 퍼시픽(AP), 설화수, 헤라, 라네즈 등의 제품 브랜드는 모(母) 브랜드 태평양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태평양의 차세대 브랜드 AP

태평양이 당당히 야심작이라고 부르는 차세대 브랜드는 아모레 퍼시픽(AP)이다. 9월 출범한 AP의 타깃은 해외의 고급 소비자. AP는 이미 미국 뉴욕의 버그도프굿맨백화점에 입접했다. 태평양은 또 AP와 온천을 함께 경험할 수 있는 다기능 화장품 매장인 AP 뷰티 스파&갤러리를 뉴욕에 오픈했다.

국내에서는 강남·인천 신세계와 목동 현대, 압구정 갤러리아백화점에 기존 태평양 매장과 별도로 AP 매장을 열었다. 백화점측은 태평양매장에서 AP를 함께 팔라고 요구했지만 "외국 명품 브랜드도 한 백화점에서 브랜드별로 매장을 운영하는 것처럼 태평양에게도 복수의 독립매장을 달라"고 응수, 자리를 얻어냈다.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유일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발휘한 대목이다.

김 부장은 "지금 태평양이 승승장구하는 것은 3∼4년간에 걸친 끝없는 연구개발 및 마케팅노력의 결실"이라며 "해외에서 통할 새로운 브랜드의 토대를 지금 닦아두지 않으면 앞으로 3∼4년 후엔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태평양은 AP를 해외에서도 'Made in Korea' 라벨을 달고 판매한다는 방침이다. 1997년 프랑스에 진출, 시장점유율 4위를 차지한 향수 브랜드 롤리타 렘피카는 사실 'Made in France' 제품이다. 화장품은 아무래도 미(美)를 다루는 제품이다 보니 선진국 산(産)이라야 팔리기 마련이어서 프랑스에서 롤리타 렘피카를 생산해 팔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AP부터는 'Made in Korea'로 밀어붙여 3∼4년 후에 먹을 파이를 확보하자는 것이 태평양의 전략이다. 김 부장은 "화장품의 메카 프랑스에서 태평양의 기술력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꾸준히 AP 마케팅을 강화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 태평양은 어떤 회사

태평양은 올해 매출 1조1,525억원, 영업이익 2,086억원을 예상하고 있는 부동의 국내 1위 화장품 메이커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원을 기록한 뒤 올해에도 외형이 9.0%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매출로 치면 2, 3위 업체의 2∼4배 규모이자 올해 유일하게 화장품업계에서 플러스 성장을 유지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태평양은 마몽드(1991년 판매 시작), 라네즈(94년), 헤라(95년), 설화수(97년) 등 고급 브랜드를 앞세워 화장품 시장을 점령해왔다. 고급 브랜드가 태평양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47.9%에서 2005년 53.4%로 늘어날 전망이다. 90년대 이전에는 ABC(50년대), 오스카(60년대), 삼미(70년대), 순정·미로(80년대) 등 각 시기별 태평양 대표 브랜드가 우리나라 화장품시장을 선도했다. 브랜드의 가치를 지탱해주는 요인은 기술력. 태평양은 57년부터 기술자들을 독일과 일본 등으로 유학보낼 정도로 연구인력 양성에 공을 들여왔다. 현재도 전체 직원의 15%인 500여명이 연구개발에 종사하고 있다.

/김태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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