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그날이세요?' 평소 상냥하던 여성이 갑자기 신경질을 내고 작은 일에 예민하게 반응해 눈물 흘리고 서러워 할 때면 본인은 물론 남편이나 직장 동료의 마음도 편할 수 없다. 가볍게 혹은 심각하게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여성의 신체적, 감정적 변화…. 주위 사람까지 긴장시키는 여성 몸의 이상 증세는 사실 '그날'보다 생리 전에 더 심각하다. 의학적으로 '월경 전 증후군(PMS:Premenstrual syndrome)'이라고 부르는 이 증세는 복부팽만, 유방통, 피로, 갈증, 짜증, 팔다리 부종, 식욕 및 성욕의 변화, 우울증, 불안증, 병적 도벽까지 무려 150가지가 넘는다.전문가들은 가임기 여성 중 20∼45%가 월경 전 증후군을 겪고 있으며, 이 가운데 5%는 일상생활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한 상태라고 말한다. 발생 빈도는 높지만 이런 생물학적인 고통을 질병이라 여기고 병원을 찾는 여성은 국내에선 아직 그리 많지 않다. 고대안암병원 산부인과 김선행 교수는 "월경 전 증후군은 부부싸움, 자녀구타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심각한 병인데도 사회적으로 저평가돼온 대표적 질병"이라면서 "외국에서는 PMS가 보통 명사화돼 일반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약물투여도 활발하게 받고 있지만, 아직 이를 질병으로 인정하는데 대해선 논란이 많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의사그룹조차 있다"고 말했다.
왜 월경 전 증후군 나타날까
왜 한 달에 한번씩 여성은 주기적으로 이런 신체적 감정적 혼란을 겪어야 할까. 이 혼란이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나 반복적으로 나타남으로써 여성의 지적능력을 감퇴시켜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만들지는 않을까.
의학계에 월경 전 증후군에 대한 첫 보고가 나온 것이 1931년(프랭크 박사). 이후 7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 월경 전 증후군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밝혀져 있는 게 없다. 정서적 유전적 영양학적 환경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 월경 전 호르몬 즉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감소 때문이라는 가설이 유력한 원인으로 떠올랐으나, 이후 다른 연구들은 이러한 가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또 다른 가설로는 유방을 발육시키고 임신 중 모유분비를 촉진하는 프로락틴이라는 호르몬이 황체기(월경 시작 10일전부터 월경 시작 때까지)에 증가해 이런 증상을 유발한다는 것. 역시 과학적인 증거는 희박하다.
또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 물질이 월경 전 증가하면서 통증 두통 우울증이 생긴다는 설도 있다. 월경 전 증후군이 있는 여성은 식사습관도 변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증상이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다. 황체기에 알도스테론, 안지오텐신이라는 우리 몸의 수분과 전해질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분비가 달라지면서 전신이 붓거나 복부 팽만감 같은 증세가 나타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평소 통증을 완화하는 엔도르핀의 분비가 생리를 앞두고 감소하면서 월경 전 증후군이 나타난다는 설도 있다. 또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같은 물질 분비가 저하돼 생긴다는 주장도 있다.
월경 시작 4∼10일 전부터 증세 나타나
월경 전 증후군의 가장 흔한 증상으로는 감정 변화이다. 최두석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가임여성의 약 80%가 월경 전 감정이나 신체적 변화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가장 많이 나타내는 증세는 감정 변화다. 불안 의기소침 초조 같은 감정 변화가 빈번하게 나타나며, 심각할 경우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일부 여성은 사소한 일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흥분하고 분노하기도 한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건망증 불면증 등에 시달린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무기력해지면서 자신감을 잃고 사회적으로 위축되면서 자살 충동까지 나타낼 수 있다.
체중증가, 온몸이 붓는 듯한 느낌, 유방통, 관절통, 근육통 등의 신체 통증을 호소하거나 구역질 설사 등 소화기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다. 또 피부가 지나치게 민감한 상태가 되면서 갑자기 지성 혹은 건성으로 변하거나 여드름이 돋아나는 경우도 있다.
남편의 사랑을 더 받고 싶어하거나, 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하기도 한다. 이상야릇한 성적 도발을 일으키고픈 충동을 느끼거나, 병적 도벽을 일으키는 여성도 있다. 판단능력이 갑자기 흐려져 이 시기만 되면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는 여성도 있다.
평소 월경 전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여성은 출산 후 산후우울증을 앓을 확률이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원인 치료법 아직은 불분명
원인이 확실하지 않은 병이니, 진단도 쉽지 않다. 중요한 진단 근거는 매월 주기적으로 증세가 나타나야 하고, 어떤 일정기간 동안만 증상이 나타나야 한다는 점이다. 월경 전 증후군은 월경 7∼10일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 월경 시작 직전이나 시작 후 수시간 내에 끝나야 한다. 최 교수는 "월경주기 4일째부터 12일째까지 비교적 증상이 없는 기간이 확인돼야 하며 황체기에는 난포기 중기(월경 주기 3일에서 9일까지)에 비해 증상이 30%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리가 시작되면 이러한 증세들은 씻은 듯이 사라지는 것도 특징이다.
월경 전 증후군은 환자가 다른 내과적, 정신과적 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경우도 있고, 갑상선질환처럼 비슷한 증세를 나타내 다른 질병으로 오진할 수도 있으므로 잘 감별 진단해야 한다. 최 교수는 " '심한' 월경 전 증후군 환자의 50∼60%는 우울증 불안증 인격장애가 동반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경구 피임제를 복용하는 여성들 중 상당수에서 월경 전 증후군과 유사한 증상을 경험한다는 보고도 있다. 평소 월경일기를 작성, 지속적으로 증세를 관찰하면 정확한 진단을 받는데 도움이 된다.
긴장을 풀고 휴식을 취하자
여성은 일생동안 약 480회의 월경기를 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료법은 운동 식이요법 약물 투여 등을 통해 증세를 완화시키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규칙적인 운동은 혈액순환과 체내 수분 대사를 원활하게 해 월경 전 증후군으로 인한 전신부종이나 유방통 불안감 등을 더는 데 매우 좋다"고 권한다. 평소 하루 30∼40분 정도씩 수영 자전거 조깅 에어로빅 요가 같은 유산소 운동을 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리기간 중에도 운동을 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직장이나 가정에서 대인관계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킬 정도가 된다면 병원에서 약물치료를 받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나타나는 증상에 따라 부종이 심한 경우엔 이뇨제를, 월경통이나 두통이 있을 경우에는 진통제를 사용하며, 유방통이 심하다면 유선의 팽창을 억제하는 약물을 투여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난소기능을 억제하는 약, 항우울제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음식으로도 증세를 조절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월경을 앞두고 많은 여성들이 설탕이나 단 음식을 찾게 되는데 증상이 심해질 수 있으므로 절제해야 한다"면서 "소금 카페인 초콜릿 유제품을 줄이고 알코올이나 담배를 제한하고, 야채 과일 생선을 많이 먹으면 증세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슴이 부풀어 오르거나 저리는 증세를 나타내는 여성은 커피 콜라 등 카페인 섭취를 피해야 한다.
PMS가 나타날 때는 하루 열량 소모가 늘어나면서 평소보다 밥이나 국수 등 탄수화물을 월경 전보다 더 많이 섭취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 5∼6회로 나눠 먹으면 좋다. 탄수화물은 세로토닌의 분비를 증가시킨다. 김 교수는 "비타민 B6·C·E 등 비타민과 칼슘, 마그네슘의 섭취는 충분히 해주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따뜻한 이해와 배려도 중요하다. 아내가 심한 월경 전 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아내의 PMS 유형을 미리 파악해놓고, 한 달에 한번 아내가 비이성적일 만큼 공격적으로 나오더라도 남편은 절대 화를 내지말고 열린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 통계에 따르면 부부싸움의 20%는 아내의 월경 전 증후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당신 화내는 건 PMS때문이야'라는 식의 말로 아내를 위로하는 것은 좋지 않다.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 서 있는 자신의 상태를 분석하는 것을 아내는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송영주 편집위원 yjs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