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몰아닥친 23일 전북 부안 읍내는 여느 시골의 일요일처럼 평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기습적인 압수수색과 삼엄한 경계로 주민들이 격앙돼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시내 곳곳에는 폐타이어와 쓰레기를 태운 자국 등 격렬한 시위의 상흔이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부안군 13개 읍·면 도로와 건물에 나부꼈던 각종 원전시설 반대 현수막과 깃발은 이날 오전 경찰과 군청직원들이 모두 철거해 찾아 볼 수 없었다.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는 경찰의 원천봉쇄로 수협 앞 촛불시위가 무산되자 이날 저녁 부안성당으로 옮겨 촛불집회를 벌였다. 주민 1,000여명이 참석한 이날 집회에는 반핵 영상물 시청 등 문화 행사와 함께 경찰의 촛불집회 봉쇄에 대한 향후 주민 투쟁 방법과 지침 등이 전달됐고 구속자 11명의 조기석방을 위한 탄원서 서명도 시작됐다.
부안성당에서 만난 김대식(43) 계화면 농민대표는 "주민들이 흥분해서 화염병 및 LP가스통 등으로 폭력을 휘두른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정부의 무성의한 대화와 강력 진압 등으로 부안 주민들의 감정은 더욱 격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 이현민(38) 정책실장은 "24일부터는 경찰이 원천봉쇄할지라도 부안 수협 앞에서 촛불시위를 개최할 예정"이라며 "계속해서 경찰측이 강경대응으로 나온다면 분신과 자살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분식점을 운영하는 박모(45·여)씨는 "19일 이후 저녁만 되면 경찰이 도로를 완전히 점거해 장사가 전혀 되지 않는다"며 "마치 계엄령 선포를 통해, 선량한 부안 시민들을 죄인 다루듯이 하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경찰은 이날도 오후 6시께부터 촛불집회 행사장으로 사용된 부안 수협 앞과 군청, 읍·면 사무소, 한전, 파출소, 보건소 등 공공시설 등에 모두 8,000여명의 병력을 배치, 예상되는 주민들의 시위에 대비했다.
이에 앞서 22일 오후 강인섭, 전재희, 오세훈 의원 등 한나라당 진상조사단이 부안을 방문, 단식농성 중인 문규현 신부와 대책위, 시위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환자 등을 만나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 황진용 대책위 공동대표(부안 제일교회 목사)는 "주민들이 폭발직전"이라며 "지난 80년대 군사독재 때에도 이렇게 시민들을 폭행하지는 않았다"고 흥분했다. 진상조사단은 이어 군청을 방문, 김종규 부안군수와 김병준 전북경찰청장을 만나 부안상황을 보고 받고 경찰의 강경진압 논란과 관련한 주민들의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한편 경찰 2,000여명은 이날 새벽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핵반대 군민대책위 사무실과 13개 읍·면 사무실, 부안농민회 사무실에 대한 수색을 실시, 쇠파이프와 각목, 쇠스랑 등 시위용품 2,600여점을 압수했다.
/부안=최수학기자 shchoi@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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