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전남 고흥군 도화면 신호리에 처음 문을 연 신호분교(흥양 초등학교로 바뀜)에 첫 발령을 받아 2학년 아이들을 맡았다. 4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때 그 아이들도 50문턱에 들어선 장년이 되었다. 멋지게 성장해 인사하러 오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지난날이 그리워진다.그 해 가을 어느 토요일 오후 2시쯤이었다. 학교 부근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고향 집에 가려고 학교에서 약 1㎞ 쯤 떨어진 봉서마을 앞에서 고흥읍행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반장이던 김윤영이 달려 와서 한사코 자기 집엘 가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마침 윤영이 집은 버스 정류장에서 지척이어서 마냥 뿌리칠 수 없어 끌려 가다시피 갔다. 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만 계시고 부모님은 논밭에 나가셨는지 안 계셨다. 윤영이 할아버지가 "선생님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지?"라며 어쩔 줄 몰라 하길래 나는 "그냥 인사나 드리고 가겠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 윤영이가 그세 뜨락에 있는 감나무에 올라가서 굵은 홍시가 세 개나 달린 가지를 뚝 꺾어 가지고 내려 오는 것이었다. 감을 받아 들고 나오면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께 "반장인 윤영이가 학교에서는 그렇게 용기 있는 아이인줄 몰랐는데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는 걸 보니 뜻밖이네요"라고 말씀 드렸다. 두 분도 역시 "아직까지 저 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선생님이 계시니까 용기가 났나 봐요" 하시는 것이었다. 그 가을 용감하게 감나무에 오르던 김윤영은 그 해가 지나기 전에 서울로 이사를 갔고,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윤영아. 지금 그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30여명이나 서울에 살고 있어. 아마 네 모습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할 거다. 물론 나도 너무 보고 싶고. 꼭 연락 되었으면 좋겠다.
/ksunt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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