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의 과세 여부를 둘러싸고 시민단체와 세무당국이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시민단체는 권력형 부정부패로 얻은 불법 이득에 대해서는 반드시 증여세를 추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세청은 불법 정치자금의 경우 대가성이 있는 돈인 만큼 증여로 보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23일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소장 최영태 공인회계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밝혀진 검찰 수사결과를 바탕으로 '상속세 및 증여세법'을 적용한 결과, 손길승 SK그룹 회장에게서 11억원을 받은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2억8,000만원, SK(10억원)·삼성그룹(3억원) 등에서 19억6,000만원을 제공받은 민주당은 6억2,400만원의 증여세를 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SK그룹에게서 100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이 돈의 실질적 수증자인 한나라당이 납부해야 할 증여세는 45억4,000만원에 달했다.
참여연대 최 소장은 "SK비자금 사건 등 관련자들이 수수한 돈은 정치자금법에 의한 합법적인 정치자금이 아니므로 모두 증여세 과세대상"이라며 "검찰 수사결과를 토대로 국세청은 관련자들의 탈세 여부를 철저하게 수사해 엄정하게 과세 처분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또 "불법 정치자금은 비과세 대상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과세 사례가 전혀 없었다"며 "이는 국세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세법 적용에 예외를 두고 있기 때문이며 결과적으로 과세당국이 탈세를 용인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법인의 경우 영수증 처리한 2억원 한도까지만 합법성을 인정, 조세특례제한법 76조 '정치자금의 손금산입특례' 조항을 통해 증여세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다. 따라서 이 범위를 벗어난 경우는 불법이며, 당연히 과세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세청은 이에 대해 민법상 증여의 개념이 '한쪽이 증여의사를 표시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여 무상 이전한 경우'에만 성립되기 때문에 불법 정치자금을 증여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형사 처벌되면 정치자금법 30조의 '몰수대상'이 된다"며 "불법 정치자금은 대가성이 있어 증여로 보기 힘든 데다, 몰수·추징에 더해 과세까지 하는 것은 이중처벌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4월과 7월 참여연대가 세풍사건과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에 연루돼 돈을 받은 정치인과 언론인들을 탈세혐의로 제보한데 대해서도 "뇌물은 대가성이 있는 돈이어서 증여로 볼 수 없다"며 과세 요구를 거부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법인이 비용을 허위로 꾸며 비자금을 조성했거나 임직원이 이 돈을 횡령한 경우 법인세와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는 만큼, 정치인이 불법으로 얻은 금전적 이득에 대해서도 과세가 이뤄지는 게 타당하다"며 국세청과는 다른 의견을 보였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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