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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마음속 피멍은 아물지않는 상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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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마음속 피멍은 아물지않는 상처로

입력
2003.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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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봤는데요, 아빠를 경찰서에 신고하고 감옥에 가두고 싶어요. 아빠만 없다면 괜찮을 것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 미은(가명)이는 밥솥에 구데기가 우글거리는 환경에서 어린 두 동생들을 돌보며 지냈다. 아버지는 2∼3일마다 집에 들러 밥을 먹이고 미은이를 때렸으며 성학대까지 했다. 보육시설로 온 미은이는 결국 아버지를 신고했고 놀이치료로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2000년 전국에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설립된 후 신고 건수는 연 4,000여건으로 늘었으나 전체 학대아동의 2∼3%에 불과하다. 최근에는 성폭행 피해아동이 법정진술을 거부, 무죄판결이 나기도 했다.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아이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1. 체벌인가 학대인가

4살박이 지혜(가명)는 평소엔 잘 놀지만 울 때면 입을 꼭 다물고 짐승 울 듯 하는 아이였다. 어느날 유치원 교사는 지혜의 등이 어깨부터 허벅지까지 살색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멍이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아이의 부모는 태연스럽게 "아이가 고집이 세서 천 혁대로 제가 때렸어요"라고 답했다. 전도사인 부모는 성경까지 인용하며 "아이의 잘못은 매로 다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사과정에서 지혜를 입양한 것이 드러났고 아동학대로 고발될 위기에 처하자 부모는 곧 지혜를 파양했다.

양부모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초등학생 3년생인 호영(가명)이는 주의력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로 학교 친구들과 항상 싸우고 문제를 일으켜 정신과를 찾았다. 약물치료 후 산만한 것은 가셨지만 부모에 반항적인 것은 그대로였다. 그를 치료한 한양대병원 정신과 안동현 교수가 상담 중 문제를 알아냈다. "너 잘못해서 많이 맞니?" "예." "어디를 맞니?" "아무데나요." "뭘로?" "빗자루든 구둣주걱이든 닥치는 대로요." 어머니가 심한 욕을 하고 때리는 버릇을 자제하면서 호영이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맞았는지 물어보면 체벌과 학대는 금방 구별됩니다. 무슨 잘못을 하면 몇 대 맞을 것이라는 경고 없이 아무데나 두드려맞은 아이는 억울하게 맞았다고 느끼죠. 배운 행동은 또래의 친구, 형제, 부모, 그리고 미래의 자녀에게 재현됩니다."(안동현 교수) 얼마나 많은 부모가 '학대성 훈육'에서 자유로울까.

#2. 가정을 해체하는 성폭행

15세 여중생 미경(가명)이는 초등학생때부터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의부는 미 명문대 출신의 지식인이었고, 부부는 최근 파경에 이르렀다. 그제서야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은 미경이는 "왜 이제서야 말하느냐"는 경찰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미경이의 변호를 맡은 강지원 변호사는 먼저 정신과 치료를 위해 미경이를 입원시켰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술할 수 있도록 검사의 출장조사를 요청했다. 처음엔 의사에게도 멍하니 제대로 말을 못했던 미경이는 안정을 찾은 뒤 검사에게 "그(의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의부의 위협 때문에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던 그가 부모가 이혼하게 되자 쌓였던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미경이의 경우 가정이 쪼개지면서 가정내 성폭행이 드러난 경우였다. 반대로 제3자로부터 당하기 십상인 성폭행은 멀쩡한 가정까지 깨뜨린다. 충격이 심한 피해 아동은 남자만 보면 의자 밑으로 숨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증상을 보인다. 어머니조차 잠을 못 잘 정도로 충격에 쌓인다. 자연 부부간에 "그러게 학원을 왜 보내" "집에서 애들 안 보고 뭐했느냐"며 무의식 중 상처를 주고 아버지는 집 밖으로 겉돌다 이혼에 이르곤 한다.

"판·검사와 경찰들이 한번이라도 성폭행 피해아동의 치료과정을 보았다면 그렇게 무자비하게 조사하지는 않을 겁니다."(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신의진 교수)

#3. 아동학대보호팀 왜 필요한가

척추뼈 골절로 병원에 실려온 중3생 철민(가명)이는 정형외과 병동에서 '치료에 비협조적인 환자'로 악명이 높았다. 간병하는 어머니와 끊임없이 말다툼을 했고 의료진 누구에게나 짜증을 냈다. 보다 못한 의료진이 소아정신과에 자문을 구했다. 철민이를 만난 정신과 의사 A씨는 다른 의료진이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아냈다. 철민이가 창문에서 실수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뛰어내렸으며, 어머니의 동거남으로부터 무지막지하게 얻어맞고 지냈던 것. 이미 가출경험이 있는 철민이는 의사에게 "퇴원하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A씨가 자기 환자가 아닌 철민이에 대해 신고를 망설이는 동안 철민이는 퇴원을 했고 A씨는 "병원에 학대아동보호팀이 있어 관심을 기울였다면 보다 쉽게 진단하고 대책을 세웠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지난해 아동학대신고 4,111건 중 법률에 정해진 신고의무자(사회복지시설종사자, 교사, 의료인)가 신고한 비율은 28.4%. 의료인의 신고는 2%뿐이다. 학대받는 아동들이 병원까지 올 가능성도 낮지만 철민의 경우처럼 병원에 와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황용승 교수는 "아동 진료경험이 없는 산부인과, 바쁜 응급실 상황에서 의료진이 학대아동에 대해 부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며 의료진의 헌신적인 관심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 예방하려면

아동학대란 신체적·성적 학대 외에 아이를 돌보지 않는 방임, 감금하거나 삭발하는 등의 정서적 학대도 포함된다. 이를 예방하려면 국민 전반적인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자녀에게 충동적으로 폭력을 쓰는 부모라면 '타임 아웃'을 훈련하도록 한다.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기 전에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1분간 숫자를 헤아리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그래도 안 되면 아이를 피해 집 밖으로 나간다. 아동에게는 성학대 예방법을 가리킨다. 수영복을 입었을 때 가려지는 부분은 남에게 함부로 보이면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낯선 사람이 만지려 하면 "싫어요"라고 명백히 거부하고 피하도록 가르친다. "엄마 아빠한테 말하지 말라"는 비밀약속이 없는지 살핀다.

아동학대의 80%는 집안에서 이루어져 발견하기 힘들지만 주변 이웃이나 교사가 관심을 갖고 신고(전화 1391)를 해야 한다. 몸에 자주 상처가 나거나 공격적이거나 몹시 수줍어하거나 이웃과 교제가 없는 경우 아동학대일 가능성이 있다.

자녀가 성폭행당한 사실을 발견한 부모는 아이 앞에서 분노하거나 아이 탓을 해선 안 된다. 가능한 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경찰과 병원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도움말 서울시아동학대예방센터

● 보호실태

현재 전국의 아동학대 예방센터는 19곳. 150여명의 상담요원들이 신고가 오면 현장을 확인하고 아이를 쉼터(단기보호시설)로 데려오는 등 개입하게 된다.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양대 안동현 교수는 "정부가 법을 만들고 예방센터를 설립하는 데에만 급급해, 신고만 대폭 늘고 아이들은 여전히 방치되는 미국의 전철을 밟을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즉 신고 후 학대받은 아동과 학대한 성인까지 적절히 치료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한데 현실은 신고접수와 현장조사에 허덕이는 실정이다. 의료진의 역할은 초기 진단 정도에 그친다. 안 교수는 "예방센터만 더 지을 게 아니라 시·군·구 단위까지 설립된 기존의 사회복지관에 아동학대 전담 인력을 충원, 후속대책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소아정신과 의사, 사회복지사, 아동심리상담 전문가 등을 양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세대 신의진 교수는"때로 문제가 있어 병원에 온 아이보다 그 부모를 치료할 필요를 발견하곤 한다"며 "의사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가정을 지키면서 학대아동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의사협회는 전국 병원내 아동학대보호팀 발대식을 갖고 의료진의 관심을 촉구했다. 기존의 3개 병원 외에 29개 병원이 보호팀을 발족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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