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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시장개혁 로드맵 수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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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시장개혁 로드맵 수용을

입력
2003.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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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공정위가 발표한 시장개혁 로드맵에 대해 논란이 많다.이 로드맵의 핵심은, 재벌의 지배주주가 실제로 투자한 돈과 계열사 간 출자를 통해 부풀려놓은 지배권의 차이가 클 경우 지속적인 규제대상으로 삼고, 그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에는 규제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꼭 필요하면서도 여러 모순을 안고 있는 현행 출자총액규제제도를 대체하는 발상이다.

새 정책은 크게 보아 두 가지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새 정책은 '의결권 승수' 개념을 도입하여 기업지배구조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겨냥하고 있다. 기업의 지배구조란 한 마디로 주주의 소중한 투자를 가지고 경영자가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율적·효과적 감시도구이다.

그런데 재벌과 같이 가족통제가 이루어지는 기업집단의 경우 대주주와 경영자가 실질적으로 같은 사람이고, 한 계열사의 대주주가 다른 계열사의 대주주와 같은 사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주주에 의한 경영감시의 의미는 상당 부분 퇴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문제의 핵심은 대주주-경영자의 전횡으로부터 소액주주를 어떻게 보호하느냐로 모아진다는 게 학계와 아울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제기관들의 견해다.

의결권 승수는 대주주-경영자가 계열사 간 출자관계를 이용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부풀림으로써 소액주주를 무력화하는 것에 제동을 건다는 점에서 지배구조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으며, 자본주의 경제의 게임 룰에 충실하다.

둘째로, 새 정책은 출자총액규제제도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더 좋은 정책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출자총액규제는 여러 긍정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기본원칙에 어긋난다는 본질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출자란 기본적으로 개별기업의 경영활동인데, 여기에 정부가 개입해 '된다, 안된다' 간섭하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가공으로 부풀려진 소수의 지배력이 경제를 장악해서는 안된다는 원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 기업의 경영활동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내부적으로 상충하는 정책인 것이다.

의결권 승수를 중심으로 하는 새 정책으로 전환할 경우 이러한 딜레마는 상당 부분 해소된다. 어느 기업에 얼마를 출자하든 상관없지만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원칙을 침해할 정도로 지배력을 부풀려서는 안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새 정책의 합리성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반론의 논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우선 한나라당이 제기하듯이, 증권집단소송법이 출자총액규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 법의 적용대상이나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요건, 인수합병(M& A) 시장의 기능 미비 등을 감안하면 어불성설이다.

박용성 상공회의소 회장 등 재계에서는 '시장은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면서 제조업 탈출 현상이 규제과다에서 빚어지고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재벌 계열사 간 순환출자가 바로 시장기능 왜곡의 주범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후안무치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제조업이 심각한 수렁에 빠져있고 기업활동을 진작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이번 시장개혁 로드맵과 제조업 위기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는 마치 '커닝하지 말라고 하니 유학 가겠다'는 이야기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시장개혁 로드맵은 그것이 매끄럽게 작동할 수 있도록 미세조정을 거친 후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다만 이 제도의 시행과 더불어, 기업 경영자에게 과도한 개인적 리스크를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 연대보증과 같은 여타 관행들에 대한 개혁, 그리고 제조업 경쟁력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장 덕 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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