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비과세와 세 감면을 줄여 세입기반을 확충하려던 참여정부의 첫 세제 개편안이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선심공세에 밀려 만신창이가 됐다.내년부터 없애기로 한 각종 비과세와 세감면 조치가 연장되고 소득공제율이 상향 조정됨에 따라 내년에만 1조원 이상의 세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더욱이 이익집단을 의식한 정치권의 몸 사리기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 국가균형발전 3대 특별법 등 각종 개혁법안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도 표류하고 있다.
세금 깎아주기 의원 입법안 60개
21일 재정경제부와 국회 재경위에 따르면 도시민의 자산증식 수단으로 변질돼 내년부터 없애기로 한 농어가목돈마련저축과 농·수·축협 예탁금의 비과세 기한이 3년 더 연장됐다. 기업의 설비투자나 생산성 향상과 무관한 특혜성 감면이라는 지적에 따라 올해 말로 폐지키로 했던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제도도 2년 연장으로 법안이 수정됐다.
근로소득 감면폭을 늘리는 대신 의료비 공제기준을 연봉의 5% 초과금액으로 조정하려던 계획도 원점(현행 3%)으로 복귀했다. 반면 연소득 2,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예식비, 장례비, 이사비에 대해 각각 연간 100만원 한도의 특별공제제도가 도입되고, 여성 생리대 부가세 면제, 택시 등록세 면제 등 각종 특혜 조항이 삽입됐다.
국회 재경위 관계자는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세제관련 법안 가운데 9개가 정부 입법안이고 60개(청원 포함)가 조세특례 연장이나 소득공제 혜택을 늘려 세금을 깎아주기 위한 선심성 의원 입법안"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각종 감세조치 폐지를 전제로 편성된 내년도 세입예산(111조원·일반회계 기준) 달성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더욱이 외환위기 이후 계속 적자재정이 이어지면서 국가채무가 급증한 가운데 경기부양을 위한 3조원 규모의 예산증액마저 추진되고 있어 국가재정이 급속히 악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처리 시급한 개혁·민생법안 표류
대외 신인도 향상과 시장 투명성 확보를 위해 통과가 시급한 주요 경제법안도 유권자의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소극적인 자세로 연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은 7월 법안심사 소위를 통과했으나 의원마다 제 각각의 의견을 보이는데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세력이 없어 법안처리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과 한·칠레 FTA 비준안도 연내 처리가 어려울 전망이다.
국회 관계자는 "상당수 의원이 '총선 악재'로 작용할 것을 우려, 몸을 움츠리고 있어 연내 처리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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