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부안군민의 시위사태에 대해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않은 채 '대화를 통한 해결' 원칙 만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정도로 사태가 악화하면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건립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게 주장도 나오지만, 일부 주민의 시위에 공권력이 밀리는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속앓이를 계속하고 있다.이런 가운데 정부는 주민들에 대한 현금보상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한데 이어 핵심 쟁점인 주민투표를 놓고도 무원칙한 태도를 보여 스스로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주민투표 실시 시기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일관성을 잃었다. 정부는 주민투표를 먼저 제안한 뒤 17일 대책위가 연내 실시를 조건으로 수용의사를 밝히자 "주민투표법이 국회에 계류중이며 공포 후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연내 실시 불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고건 총리는 불과 이틀 만에 "대화만 계속된다면 연내 실시가 불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가 20일에는 또다시 "주민투표를 하기 위한 찬반토론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주민투표법이 있어야 한다"며 종전 입장으로 재선회했다.
이 때문에 대책위는 "완전 백지화라는 기본방침까지 철회하며 성의를 보였는데도 정부가 말장난으로 주민들을 우롱하고 있다"며 극도의 불신감을 드러냈다. 정부는 주민투표법 제정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핵 폐기장 건설 문제가 이 법의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입법·시행 당사자인 행자부와 핵 폐기장 문제 소관 부처인 산자부도 명확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법률적 해석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
주민투표의 효력에 대해서도 정부의 입장은 불분명하다. 행자부 관계자는 "의견을 수렴하는 '자문형'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다만 정치적 구속력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도 "주민 다수가 반대하면 추진이 어려운 것 아니냐"면서도 법적 효력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회피했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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