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가 제각각이다. 누구는 정보를 얻고자 책을 읽고, 또 누구는 지혜를 구하고자 책을 읽는다. 혹자는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책을 본다. 내 경우는 책이 좋아 책장이가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책 만들기를 업으로 하다 보니 이제는 노동으로서의 책 읽기를 감수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그러나 우연히 읽게 된 '소리의 황홀'은 내게 노동으로서의 책 읽기가 아닌, '간접체험을 통한 대리만족'이라는 책 읽기의 고전적 미덕을 오랜만에 되찾아 준 책이다. 잠자리에 누워 저자 윤광준이 들려주는 오디오며 음악 이야기를 읽노라면, 정작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전설의 스피커 알텍이 내 집 거실에서 슈만의 환상곡을 흘려보내고 있고, 가격에 질려 감히 넘보지도 못했던 소위 하이엔드 기기라는 마크 레빈슨이나 매킨토시가 우리 집 거실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이다. 스피커는 디자인이 좋은 소너스 파베르 쪽으로 갈까, 아니면 기품 있는 B&W 노틸러스가 좋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어느새 베토벤인지 모차르트인지 모를 이의 음에 실려 내 몸은 행복의 꿈나라로 날아가곤 했다.
하여 고백컨대, 잠자리에서 수면용으로 이 책을 읽다가 불현듯 미칠 듯이 소리가 그리워, 한밤중 거실에서 볼륨을 최대한 줄여놓고 음악 듣기를 수십 번, 혹은 주말마다 용산전자상가의 오디오샵 주변을 서성이기를 수십 번 되풀이하고서야 나는 이 책을 접어 책꽂이에 꽂을 수 있었다. 사실 '소리'는 글도 아니고, 말도 아니다. 지식도 아니며, 의미도 아니다. 소리는 생겨났나 싶으면 저 멀리 사라지고, 사라졌나 하면 어느새 마음속에 또아리를 트는 그 무엇이다. 결국 소리는 체험이고 느낌이며 때로는 전율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표현대로 '황홀'이다. 저자는 이런 '소리의 황홀'을 오디오라는 '외피'를 이용해 자극적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우리 다같이 한번 '황홀해 보자'고…. 그러니 이 책을 읽기 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그 유혹에는 당신이 쓸 수 있는 그 어떤 돈보다 많은 돈이 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하지만 저자의 유혹에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더라도, 혹은 음악과 오디오는 나랑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단언하는 당신일지라도, 이 책은 한번 읽어볼 만한 충분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소리의 황홀'은 무언가에 미친(이 책에서는 소리에 미친) 한 인간의 열정과 인생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인생 에세이요, 음악과 예술, 기술과 인간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손색없는 인문 교양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인호·바다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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