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보험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한 뒤 변호사 비용이 없어 항소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50대 여성에게 국고로 변호사를 선임해 준 뒤 심리를 벌인 끝에 6,800여만원의 승소 판결을 내렸다. 법원의 조치는 민사소송의 국선변호사 제도라고 할 수 있는 '소송구조제도'를 적용한 드문 사례로, 제도가 제대로 활성화할 경우 사법체계에 대한 국민들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식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강모(51·여)씨는 2001년 11월 형광등 소켓 품질관리인으로 일하던 남편이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야간 운전 중 갓길에 서있던 고장난 화물트럭을 들이받아 사망했는데도 "남편은 자신의 과실로 사망했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당했다. 강씨는 어렵게 사선 변호인을 선임, 자신과 딸, 시어머니와 함께 H보험사를 상대로 1억2,000여만원의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했다. 강씨는 고민에 빠졌다. 변호사 선임은 고사하고 청구액의 일정 비율을 법원에 미리 납부해야 하는 인지대를 낼 돈이 없었기 때문. 강씨는 결국 딸과 시어머니의 청구는 빼고 자신만 청구액을 3,000여만원으로 대폭 낮춰 항소했다.
그러나 복잡한 교통사고 소송에서 거대 보험사를 상대로 강씨가 혼자 소송을 원활히 진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재판부인 서울고법 민사3부(변동걸 부장판사)는 강씨의 '나 홀로 소송'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강씨에게 "국고로 비용을 대 변호사를 선임해 주는 제도가 있으니 신청해보라"고 권했고, 강씨는 정식으로 소송구조신청을 내 변호사를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재판부는 "패소가 명백하지 않은 데도 변호사 비용이 없어 소송에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를 구제한다는 소송구조제도의 취지에 맞는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법원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소송구조재단을 운영하는 외국의 경우처럼 정해진 예산으로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최대한의 사법 혜택을 줄 수 있는 소송구조제도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 소송구조제도란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 도입됐다. 민사소송에서 패소가 명백하지 않은 데도 인지대, 송달료, 변호사 선임 비용을 낼 능력이 없어 소송을 진행시키지 못하는 소송 당사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다. 소송 당사자가 법원에 신청하거나 재판부가 직권으로 소송구조를 명할 수도 있다. 변호사 구조의 경우, 재판부가 소송구조를 결정한 뒤 이를 담당 지역 변호사회에 통보하면 적정한 변호사가 선임되며 변호사비(건당 70만원 가량)는 국고에서 나간다. 대법원은 최근 배정된 예산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제도 이용이 미흡하다며 각급 법원에 이 제도를 많이 활용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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