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말러… 4년간의 여정 "대단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말러… 4년간의 여정 "대단원"

입력
2003.11.22 00:00
0 0

국내 교향악단 사상 전대미문의 기획에 마침표가 찍힌다. 4년 간의 기나긴 여정, 전 10회 공연에 연인원 1,507명이 연주에 참여한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1999∼2003 시리즈' 마지막 연주가 29일 저녁 7시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다.죽음을 앞둔 말러(1860∼1911)가 아내 알마에게 남긴 사랑 노래인 '미완성 교향곡 10번'(아다지오인 1악장만 연주)과 청년시절의 열정과 재기를 담은 교향곡 1번 '거인'이 연주된다. 99년 첫 연주 레퍼토리인 '거인'은 시리즈를 되돌아 보는 성격이다. 긴 장정을 마무리하는 부천필의 음악감독 임헌정(서울대 교수)씨와 단원들을 부천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말러 교향곡이 있으니까 했습니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에 도전한 이유를 묻자 임씨는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 경처럼 대답했다. "국내에서 안 했으니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있어요. 타의에 의해 쫓겨 다니는 사람을 말하죠. 말러는 유대인이었어요. 그들은 구원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말러의 음악에는 이런 보헤미안의 정서에 빈에서 지휘자 생활을 하며 기독교로 개종한 복합적 요소가 깔려 있습니다."

말러는 일생을 지배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거대한 규모의 복잡하고도 아름다운 10개의 교향곡에 담았다. 세계 정상급 악단에게 도전 의욕을 불러일으켜 요즘은 베토벤 교향곡보다 인기가 높다. 임씨의 해석은 '자유로움'이다. 지휘자 출신인 말러는 악보에 세밀한 지시를 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해석이 쉽지 않으리란 예측은 기우였다.

"음악이 있고 기보법이 있습니다. 사인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임씨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성경구절을 읊은 후 입으로 교향곡 1번의 2악장 도입부를 불러준다. "이 곡은 렌틀러에요. 농부들의 춤이죠. 4분의 3박자를 그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학구적인 지휘자의 영향은 단원과 청중에게도 이어졌다. 매번 공연 전에 말러의 음악을 해설해 주는 '프렐류드(전주곡) 콘서트'를 여는데 처음에는 지휘자가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설명했다. 제2 바이올린 부수석인 최은규씨는 외국에서 다량의 서적을 구입해 공부한 말러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단원들과 '말러리아'라는 말러 음악 연구모임에 돌렸다. 어느 팬은 여러 교향악단이 녹음한 말러 교향곡 CD를 지휘자 집으로 보내기도 했다.

임씨는 능력에 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수고해 준 단원들에게 공을 돌린다. 휴가 차 연습에 참여한 재미교포 바이올리니스트 데니스 김(홍콩 필하모닉 악장)은 "미국에서는 오케스트라 단원이 독주자보다 낫다.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엣 강도 독주자 생활을 접고 보스턴 심포니 부수석으로 갔는데 주당 20시간 근무에 연봉 15만 달러, 여름휴가만 두 달"이라며 "부천필의 현악파트는 이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임씨는 "우리는 1만5,000달러"라고 웃었다. 국내 다른 시향과 비교해도 열악한 수준이다.

제1 바이올린 파트의 심윤희씨도 "8년 동안 미국 유학을 마치고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니까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더라"고 독주자 위주의 국내 풍조를 아쉬워했다. 그러나 보람은 크다. 오보에 파트의 이명진씨는 "연습하면서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국내 교향악단이 취약했던 금관 파트의 기량도 크게 향상됐다.

부천필의 다음 목표는 내년 하반기에 예술의전당 무대에 올리는 세계 명 교향곡 시리즈. 심윤희씨의 말에는 단원들의 각오가 스며있다. "악단에 기도모임이 있어요. 세계적 교향악단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10여 년 전에는 속으로 웃었지만 지금은 점점 믿음이 가고 자신도 있습니다." (02)580―1300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