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당시 한 기업이 비자금을 세탁해 정치권에 제공한 단서가 검찰에 포착됨에 따라 문제의 기업이 어딘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검찰은 최근 정당 관련 계좌에 대한 추적을 통해 100만원권 중 고액의 헌 수표가 다량 입금된 사실을 발견했다. 수사팀은 이 수표가 대부분 서울 종로 일대의 금은방을 거쳐 들어왔다는 공통점에 주목했다. 검찰에 따르면 문제의 헌 수표는 어느 한 기업이 금은방을 통해 매입한 뒤 정치권에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은방은 골프샵, 고가 의류매장과 더불어 중·고액권 수표의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 검찰은 최근 이들 금은방 주인 10여명에 대한 소환 조사에서 대선 당시 모 기업 직원이 현금을 들고 와 헌 수표와 바꿔 갔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헌 수표 매입을 전형적인 자금세탁으로 설명한다. 사채업자를 통한 다단계 돈세탁, 전액 현금화한 후 전달하는 방법 외에 헌 수표 교환도 주된 자금세탁 기법이라는 것이다.
SK처럼 현금을 바로 전달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 부피가 커 전달이 번거롭고 보안유지가 어려워 이 같은 방법을 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돈 세탁은) 정당쪽의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돈을 준 쪽에서 알아서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미 이 기업 관계자를 소환, 돈 세탁 경위 및 자금 출처를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구체적인 기업명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돈의 규모에 대해서도 검찰은 "현재는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며 함구하고 있다.
그러나 SK에 이어 비자금 조성 및 불법 대선자금 제공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는 점에서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그 동안 끊임없이 '설'로만 나돌던 모 대기업의 100억원대 불법 대선자금의 꼬리가 잡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검찰의 표정도 밝아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12월 초·중순까지는 대선자금 수사의 틀이 잡힐 것 같다"며 "다음 달부터 현대비자금, 전재용씨 비자금 등 나머지 사건들을 정리하고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반드시 휴가를 가겠다"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수사팀이 큰 월척을 낚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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