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교묘한 언론통제와 그의 크렘린궁 사생활을 폭로한 한 여기자의 자서전이 요즘 러시아 정가를 달구고 있다.2001년 크렘린궁 풀 기자단에서 쫓겨난 옐레나 트레부고바 기자는 집권 4년째인 푸틴의 국정 난맥상과 개인적 비리, 스캔들 등을 담은 책'크렘린의 저열한 이야기(Tales of a Kremlin Digger)'를 최근 펴냈다.
이 책은 초판 1만부가 발매된 지 하루 만에 동이 난데 이어 추가로 나올 3만부도 거의 다 예약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크렘린궁 정부도 100부를 대량 구매하는 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 책이 러시아 출판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푸틴의 언론통제로 권력의 막후 이야기를 전혀 접하지 못했던 러시아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매우 드문 기록이기 때문이다.
트레부고바 기자는 이 책에서 "크렘린의 기자로 살아남기 위해 철저한 아첨꾼이 되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며 "대통령에게 하는 기자들의 질문은 사전에 모두 공보담당실의 검열을 거쳐야 할 만큼 언론통제가 극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1998년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책임자였던 푸틴과 단둘이 점심을 같이 하는 자리에서 푸틴이 새해 전날 밤을 같이 보낼 것을 은밀히 제안해 왔다고 말했다. 또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소년을 문병하는 자리에서 "다음부터는 교통신호를 위반하지 마!"라고 한 것과 "모든 섹스는 다 변태적인 것이다"라고 말한 것 등 푸틴의 일단의 성격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일화를 폭로했다. 그는 특히 섹스에 관한 것과 냉혈한적인 발언에 대해서는 그의 공보책임자가 끈질기게 공개하지 못하도록 간섭해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가장 독립적인 방송인 NTV는 이 책에 대해 대대적으로 광고했으나 정작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막판에 취소돼 의구심을 낳았다.
다음달 의회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계에서는 이를 정치적 쟁점으로 삼을 태세다. 야당들은 "러시아에 검열 등 과거 국가통제의 망령이 되살아 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트레부고바는 "언론의 자유가 푸틴 정부에서 얼마나 침해 당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책을 썼다"며 이런 면에서 푸틴의 사람들은 "돌연변이적인 정신 이상자들"이라고 비난했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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