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10년째 홀로 사는 할머니들을 돌보고 있는 문재진씨. 뇌성마비로 불편한 몸이지만 자전거에 할머니들에게 줄 선물과 반찬을 싣고 나설 때 마음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자기가 쓸 것을 나누고 쪼개 남을 도우며 사는 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관계도 없는 이들에게 돈과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붓는 거죠?” 대답은 참으로 소박했습니다. “도우며 사니 너무 즐거워요. 제가 가진 작은 것을 나눠줬을 뿐인데 너무나 큰 사랑이 돌아오거든요.”
‘동정심’을 뜻하는 영어 단어 sympathy는 ‘함께(sym)’와 ‘고통(pathy)’을 합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상대방의 어려움을 모른다면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일까요. 실제로 동물은 애정을 가질 수는 있지만 동정심을 갖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나의 것을 아껴가며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을 돕는 이유도 그들이, 아니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가 거리를 울릴 날이 다가옵니다. 손등이 시려오는 겨울은 헐벗은 이들을 돌아보게 하는 계절이지요. ‘이제 와서 뭘…’이라고 망설이는 동안 나눔에 참여할 기회가 또 한번 지나가는 건 아닐까요. 베풂을 실천하는 이들의 따뜻한 얘기를 들으며 올 한해를 값있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부인 로레타 스콧 여사가 말했듯이 우리는 모두를 도울 수 없지만 모두가 모이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습니다. 누구를 어떻게 돕는지 모르겠다구요? 고개를 조금만 돌려보십시오. 꼭 돈으로만 돕는 것은 아닙니다. 문화나눔, 휴식나눔 등 뜻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훈훈한 정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게 시대의 화두가 됐지만 정녕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탓합니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송진우는 승리를 기록할 때마다, 프로농구 SK나이츠의 조성원 황성인 이한권은 3점슛이나 어시스트를 기록할 때마다 구단 등과 함께 기금을 모읍니다. 한 여행업체는 울릉도 성인봉을 찾는 등산객들이 1m를 오를 때마다 10원씩의 성금을 모으고 42.195㎞의 마라톤코스를 완주하면서 m당 10원씩 내놓은 마라토너들도 있죠.
남을 돕는 것이 무슨 이벤트냐고요? 물론 아니죠. 남 모르게 묵묵히 어두운 곳을 밝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런 익명의 ‘가난한 마음’들이 공동체적 삶을 지탱해가는 든든한 지주죠. 그러나 마음과 정성에 점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곧 크리스마스 캐롤이 거리를 수놓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마음의 ‘자선냄비’를 꺼내 한해동안 얼마나 채웠는지 되돌아봅시다.
글 한창만 기자
사진 원유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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