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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집시법 改惡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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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집시법 改惡 안된다

입력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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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자유는 언론·출판·결사의 자유와 함께 '표현의 자유'를 구성한다. '표현의 자유'는 양심의 자유 등과 함께 '정신적 자유권'에 속하는 것으로, 재산권 등 경제적 기본권과 달리 그것을 제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중요한 기본권이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각국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만드는데 있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다.우리처럼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라는 단일법률을 통해 '집회의 자유'를 집중적이고 포괄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방식을 취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우리의 집시법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에 해당하여 위헌일 수 있는 몇몇 독소조항들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위헌으로 판명이 난 '국내주재 외국공관 100m 이내 집회 금지' 규정이 한 예이다.

그런데, 실망스럽게도 19일 국회 행자위를 통과한 집시법 개정안은 이러한 헌재 결정을 법에 반영한다는 것을 명분으로 더 많은 독소조항을 첨가하려 하고 있어 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은, 집시법에 대한 '개악(改惡)'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현행 집시법 제8조 2항은 시간과 장소가 경합하는 2개 이상의 집회 신고가 들어올 때 집회목적이 서로 상반되거나 서로 간에 방해가 된다고 인정될 경우 나중에 접수된 집회신고에 대해 금지통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찰은 이 조항을 확대해석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복수집회를 '서로 방해 되는' 집회로 간주하여 1개의 집회만 허용해 왔으며, 대기업 등이 이를 악용해 몇 년간 주요 집회 장소를 미리 선점하는 폐단을 낳았다.

최근 대구지방의 경우 집회신고의 95%가 실제로 집회도 열지 않으면서 다른 집회의 개최를 막기 위한 '집회 막기용' 신고였다는 보고가 그 심각성을 말해준다.

개정을 하려면 이러한 조항을 뜯어고쳐, 복수집회를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가운데 두 집회 간 충돌위험이 명백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금한다고 했어야 옳다. 그래야 '집회의 자유'라는 신성한 '표현의 자유'가 적극적으로 보장되는 '개선(改善)'의 법개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회 '15일전부터 2일전 사이'에 집회신고서를 제출토록 한 개정안도 문제가 많다. 집회에는 장기간을 요하는 장기 집회도 있을 수 있다. 장기 집회도 집회의 자유가 보호하는 '집회'에 포함되는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13일을 초과하는 집회를 사실상 금한 이 개정안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침해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전국 주요도로에서 행진 금지' 규정을 둔 것도 대표적인 개악에 해당한다. 집회란 원래 참가자들의 의사를 효율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람이 많이 통행하는 도로 공원 광장 등 공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도 개정안은 '원활한 교통소통' 등을 명분으로 집회의 자유가 구현되는 주된 무대 중의 하나를 국민들로부터 빼앗음으로써 집회의 자유를 형해화하려 하고 있다.

물론, 불법폭력 집회를 집회의 자유로 보호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집회에는 정부의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이외의 평화적이고 건설적인 집회마저 막연하고 모호하며 불합리한 규정들에 의해 불법폭력 집회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금지될 수 있다는데 있다.

국민의 '표현의 자유'가 유린되고 그것이 국가안보나 질서유지를 위한 것으로 포장되던 과거를 진정 우리는 잊어가고 있는가. 할 말을 하지 못해, 자기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집회를 통한 의견교환의 기회를 갖지 못해 숨죽여야 했던 그 어두운 날들의 아픔을 정녕 우리는 잊었는가.

원래 건강한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의 시끄러움을 수반한다. 집시법의 바람직한 개정방향은 집회의 자유의 제한보다는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임 지 봉 건국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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