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눈떠보세요. 좋아하시는 새우깡 여기 있어요. 오늘은 입맛이 좀 도세요?""아까 내가 준 카세트 들어봤어요, 사뮤엘? 비행기 표는 어떻게 됐어요? 빨리 집에 가야 할텐데…."
팔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과 외국인 노동자의 거친 손을 보듬는 것으로 시작하는 다일 천사병원 김혜경(48) 원장의 하루는 오늘도 분주하다. 그녀는 지난해 10월 6,000여명이 8년간 모은 돈 50억여원으로 문을 연 이 병원을 한해 동안 이끌어가고 있다.
천사병원은 '밥퍼 목사'로 이름난 최일도 목사가 청량리 인근의 영세상인, 노점상, 미화원 등 가난한 이들의 도움으로 만든 시설.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노숙자, 독거노인, 외국인 노동자 등을 돌보는 무료 병원이다. 원장이자 원목인 그녀는 "'천사'라 불리는 수 많은 기부자와 자원봉사자의 힘만으로 병원을 운영해가는 나날을 기적이 아닌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상근의사는 단 한 명, 나머지는 모두 스스로 찾아온 의사들의 봉사 진료로 꾸려간다. 동부제일 병원 강성만 원장, 명동 밝은세상안과 이인식 원장 등 60여개 병원의 원장급 의사들이 발벗고 나섰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오는 의사들 덕분에 천사병원의 진료시간은 특이하게도 오후 1시∼9시까지다.
"1년 동안 저희 병원을 거쳐간 자원봉사자가 3,000명이 넘어요. 하루 소요 비용만 약 1,000만원에 달하지만 환자들에게선 1원도 받지않아요. 이 역시 매월 1만원씩 보태주는 8,000여명 후원자들의 도움으로만 충당하고 있습니다."
간호사였던 김 원장은 9년 전 '피할 수 없는 부름을 받아'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후 세브란스 병원 임상목회 세미나에서 최 목사를 만나 천사병원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하루 40명 정도에 불과하던 환자가 이제 100여명으로 늘었고 입원환자도 20명이 넘어서면서 김 원장의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그녀는 악덕 업주에게 시달려 한국인이라면 치를 떨던 러시아 환자가 "한국에도 신이 있다는 걸 알았다"며 퇴원하거나 치료 받고 본국으로 돌아간 파키스탄 청년이 "한국 사람들은 천사"라며 전화해 올때면 한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같은 기쁨 때문에 일하는 것이지 거창한 명분은 없어요. 무보수로 일하는 자원봉사 의사와 30여명의 간호사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병원을 후원해주는 얼굴 없는 천사들이 이 병원의 주인입니다. 저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이지요."
/김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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