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은 자기자본만으로 하는 게 지선(至善)이 아니다. 막말로 하자면 남의 돈을 자기 돈처럼 쓰되, 잘 쓸 줄 아는 기술이다. IMF 경제난 때는 기업들이 은행 돈을 흥청망청 쓴 것을 두고 부정적 의미의 차입경영이라고 했다. 가계 역시 마찬가지. 차입경영으로 즐기고 놀던 사람들이 넘쳤다. 다른 배경도 있지만 요즘 사회문제로 번진 신용불량 사태도 같은 문제다.■ 미국 경제가 빠른 회복세를 타고 있다지만 뜻밖에도 미국 가계의 신용불량 상태는 심각한 위기수준이라고 한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분기 대비 7.2%나 성장해 19년만에 최고를 기록하면서 다른 나라들의 경제까지 견인해 간다는데, 그 그늘 속에 눈덩이 같은 빚에 신음하는 개인과 가계의 고통이 한창이라는 것이다. 수치는 성장하는데 고용증가가 따르지 않는 탓에 실업률은 여전히 6%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먹고살기는 미국민들도 어렵다는 얘기다.
■ 미국 중산층의 생활고를 설명하는 통계 중 하나로 저축률이 예시된다. 30년 전 가구 당 평균 저축률이 11%였던 데 비해 지금 미국의 중산층은 저축은커녕 부채만 3배가 늘었다고 한다. 은행과 신용카드 빚은 지난 9월 한 달만 해도 전 달에 비해 150억달러, 9.7%나 늘어난 기하급수적 증가세였다. 부시 정부의 세금환급과 저금리 정책이 지표경제를 개선했지만 대출과 차입경영의 러시를 부추겼다는 분석인데, 지난해 미국의 개인파산자는 160만명, 최고치였다. 여기에 미국의 신용카드 회사들은 만만한 서민들의 대금연체에 가혹한 연체료와 가산금리를 매겨 폭리를 취한다고 한다. 우리에겐 생소한 연체료는 카드대금을 연체할 때마다 부과되는 일종의 벌금이다. 회사마다 다르지만 평균 29달러, 우리 돈으로 3만6,000원쯤 되는데, 연체료는 미국 카드사들의 가장 중요한 수익원으로 자리잡았다. 1996년 17억달러이던 것이 지난해 이 수입은 73억달러나 됐던 것으로 집계된다.
■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 현상을 "생계유지에 급급한 가족들이 '파산'이라는 이름의 트럭이 바짝 쫓아오는 고속도로를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모습"이라고 비유한다. 그러면서 중산층의 채무위기에 대해 "나라의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다"고 걱정한다. 우리의 경우 350만명에 달하는 개인 신용불량자들이 신용카드회사들에 존폐의 위기를 안겨주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한국에서 남의 돈 쓰기로는 정치를 따라갈 상대가 없다. 수십억, 수백억원 쯤은 흔한 단위이고, 받아 놓고도 안 받았다고 잡아떼고 보는 '채무자'다. 그리고는 지금 준 쪽과 받은 쪽이 모두 위기에 몰려 있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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