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및 의료 소모품 분야의 세계적 기업인 비 브라운 한국지사 직원들은 술 '한 잔'하고 싶을 때면 사무실 옆 직원 휴게실로 간다. 음악이 흐르고 따뜻한 느낌의 유화가 걸려 있는 그곳 와인 냉장고엔 세계 각국의 포도주가 가득 차 있다. 물론 와인이 싫다면 취향에 따라 원두 커피나 망고 주스를 마실 수도 있다. 자판기에 넣을 동전을 찾느라 주머니를 뒤져야 하는 일반 기업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사실 이 회사의 인테리어는 청담동 고급 카페를 연상케 할 정도이고 화장실엔 비데까지 설치돼 있다.사장은 더 엉뚱하다. 비 브라운 코리아 김해동(50·사진) 사장은 실적으로 직원들을 다그치는 일이 없다. 그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회사를 재미있는 놀이터로 만들고 직원들이 품위 있는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느냐에 있다. 그는 항상 "좀 더 열심히 일 합시다" 대신 "한 번 신나게 놀아 봅시다"라고 얘기한다. 미식가 컬처 클럽, 인라인스케이트 클럽, 스킨스쿠버 클럽 등 동호회 활동에 필요한 경비의 절반을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엔 전직원 100여명과 함께 베트남 하롱베이로 여행도 다녀 왔다. 김 사장은 "열심히 일만 하다 보면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회사는 인생을 희생하는 곳이 아니라 사랑과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 인생을 즐기는 곳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그의 경영 철학은 사실 비 브라운의 기업 문화에서 비롯됐다. 독일에 본사를 둔 비 브라운에서는 그룹 회장이라고 해도 각국의 자회사를 방문할 때 적어도 6개월 전에 협의한다. 개인 생활이 최우선인 만큼 자회사 사장의 개인 휴가가 방해 받아선 안 된다는 것. 2월 브라운 회장이 방한한다는 전화도 지난해 6월에 받았다. 직원을 존중하고 기업의 독립성을 추구하며 단기적 성과보다 장기적 전략에 집중하는 것이 창업 이래 164년 역사상 한해도 적자를 본 적 없는 비 브라운의 핵심 역량이다.
김사장이 비 브라운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홍익대 물리학과 4학년 때부터 사업상 재능을 보이며 의료 및 과학기기 수입 오퍼상을 차린 그는 1980년대 중반 수천만원대의 비 브라운 미생물 발효기를 한국 시장에 소개, 100대 이상 판매했다. 순식간에 시장 점유율을 80%로 끌어 올린 것이다. 이러한 성과를 높이 평가한 비 브라운은 아예 그룹의 주력 사업인 의료기기 사업의 한국 부문을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식 의료 시스템이 정착된 한국 시장에서 유럽 상품으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처럼 여겨졌다. 이 때문에 2년 동안 고사하던 김 사장은 결국 비 브라운과 합작회사를 세우기로 하고 90년 비 브라운 코리아를 설립했다. 이후 회사는 13년 동안 평균 30% 이상 성장했고 올해 매출액은 350억원을 넘을 전망이다. 비결을 묻자 김 사장은 "단지 직원들이 기분 좋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같이 즐긴 것 밖에 없다"고 밝혔다.
최고경영자(CEO)를 꿈꾸는 샐러리맨들에게 해 줄 말을 부탁하자 김 사장은 "단순히 CEO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종의, 어떤 회사의 CEO가 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한 뒤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다국적기업은 학벌이나 '백'의 영향 없이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할 수 있으니 이렇게 좋은 찬스가 또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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