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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테러, 남의 일 아니다

입력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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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일을 그르친 뒤에는 아무리 뉘우쳐도 소용이 없으니, 미리미리 대비하자는 뜻을 담고 있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경구이다.그런데 근간에 우리 사회가 테러문제에 대처하는 모습이 마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지 않을까 싶어 심히 우려된다. 주지하다시피 9·11테러이후 세계는 테러와의 전쟁에 돌입해 있다. 2002년 10월12일 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와 그 해 11월28일 케냐 몸바사 동시 다발 테러 등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수 많은 테러사건으로 2002년 한해동안만 9,20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최근 테러는 9·11테러나 발리섬 테러에서 보듯이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공격으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피해자가 될지 조금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이러한 무차별적인 국제 테러가 한건도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마음을 결코 놓을 수는 없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최근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대사관과 국제 치안유지군 등을 대상으로 한 자살폭탄 테러 첩보가 입수돼 대사관 직원이 피신한 일이 있었다. 또 지난 봄에는 알 카에다 조직원이 국내에 잠입하여 미군기지 등 테러대상을 염탐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끔찍한 테러의 망령이 우리 주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테러문제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테러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테러방지법을 입법하여 범 국가적으로 테러에 대비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아직까지 테러에 대비한 법률 하나를 제정하지 못하고 있다. 9·11테러 이후 월드컵 등에 대비해 테러방지법 제정이 추진되었으나 인권단체의 반대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자세로 보류되었다. 테러방지법은 최근 수정을 거쳐 다시 입법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테러방지법이 인권침해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 법을 제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월드컵 때도 테러 위협이 없었는데 월드컵 이후에 테러방지법을 제정할 경우 이를 빙자해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들의 논리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이번에 입법과정을 밟고 있는 테러방지법에는 인권을 침해할 독소 조항이 거의 없어 보인다.

따라서 오히려 테러방지법 제정이 지연되어 테러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함으로써 생기게 될 문제점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에 하나 국내에서 대형테러가 발생할 경우, 이에 따른 인명피해와 물적 손실은 물론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 추락 등 국가적인 피해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가 전혀 현실적이지도 않은 인권침해 가능성을 우려해 목전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테러에 대한 대비책을 소홀히 한다면 이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격이 아닐까. 아무쪼록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테러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여,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정 광 하 전 인천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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