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주가 내려가고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초겨울의 풍광은 쓸쓸하다. 색깔도 칙칙하고 을씨년스럽다. 눈이라도 소복히 내리면 좋으련만….여행의 주제를 잡기도 애매한 이때 자연이 아닌 사람 속으로 떠나보자. 사람이 살아가는 숨결과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곳, 바로 장터다. 도시의 번잡한 장터가 아닌 구수한 시골의 장터로 떠난다. 마침 22일은 강원도 정선의 5일장이, 23일은 동해시 북평장이 열리는 날이다.
정선장은 강원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북평장은 규모가 가장 큰 장이다. 또 정선장이 주로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산물(山物)을 취급한다면, 북평장은 바다에서 올라온 해물(海物)이 주제다. 장만 볼 것이 아니라, 주변의 유명한 명소도 구석구석 챙긴다. 특히 동굴을 추천할만 하다.
준비
정선이나 평창에서 1박하고, 정동진이나 동해시, 혹은 삼척시에서 2박하는 게 좋다. 정선에서 가장 큰 숙박시설은 강원랜드 카지노호텔(033-590-7700)이다. 그러나 고한읍에 있어 여행의 동선에서 조금 벗어난다. 정선읍에는 동호호텔(562-9000) 대왕장(563-0171) 정선장(563-0066) 하얏트파크모텔(562-5666) 갈왕산장(563-7979) 등이 있다. 장날 전날에는 읍내의 숙박시설이 붐벼 방을 못 구할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정선에서 1시간 거리인 평창읍까지 나가야 한다.
평창읍에는 장급여관만 있다. 평창장(332-3677), 노성장(333-4661), 로얄장(333-8001), 백오파크장(333-6621) 등이 있다. 분위기를 선호한다면 평창읍 직전의 뇌운계곡을 찾는다. 아름다운여행(332-7907), 뇌운산장(332-8971), 돌뫼농원산장(332-1220), 구름속의산책(332-3716) 등 수준높은 숙소들이 많다.
동해시, 정동진, 삼척시에는 숙박시설이 많다. 여행 비수기여서 더욱 여유가 있다. 고급 시설을 꼽으라면 정동진의 썬크루즈(610-7000)다. 대신 숙박료가 비싸다. 동해시에는 독특한 숙박시설인 망상오토캠핑리조트(530-2690)이다. 서구적인 캠핑장이다. 삼척에서는 새천년도로변에 새로 문을 연 팰리스관광호텔(575-7000)이 고급으로 꼽힌다.
출발(금요일 오후 6시30분)
영동고속도로 새말IC로 빠져 우회전, 1㎞ 정도 가면 원주에서 이어지는 42번 국도를 만난다. 이 국도를 타고 평창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전재라는 이름의 고개가 나온다. 전재를 넘으면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마을(횡성군 안흥면)이다. 찐빵집이 셀 수 없이 많다. 원조집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심순녀씨네 안흥찐빵집(033-342-4460)이다. 저녁식사 대용으로도 훌륭하다.
제대로 저녁을 먹으려면 안흥면에서 강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횡성한우, 안흥찐빵에 이어 횡성의 3대 먹거리에 들어가는 강림순대를 찾는다. 강림순대집(342-7148)이 유명하다. 순대도 먹고 순대국밥도 먹는다. 오후 9시까지 입장하는 손님만 받는다. 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저녁에는 미리 전화를 해 놓아야 한다.
정선 5일장(토요일 오전 10시)
정선 5일장은 청정한 자연환경과 시골장터의 향수를 그대로 간직한 장이다. 지역주민 위주의 장이었는데 ‘정선 5일장 관광열차’ 등 다양한 여행 상품이 등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여행 마니아라면 이미 한번쯤 들렀을 법하다.
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은 오전 10시께. 상인들이 좌판을 준비하는 모습부터 보려면 9시께 장에 나와야 한다. 유명세와 달리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물건도 사고 모두 돌아보는 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약초가 많이 나와있다. 황기, 더덕, 머루, 다래 등 도시에서 보기 힘든 산물을 대할 수 있다.
점심식사는 ‘정선식’으로 한다. 정선에서 가장 이름 난 먹거리는 메밀칼국수. 일명 ‘콧등치기국수’라고도 한다. 멸치를 우린 물에 우거지와 호박 등을 넣고 된장을 푼다. 여기까지는 그냥 된장국이다. 이 국물에 굵게 썬 메밀칼국수를 넣고 끓인다. 면발이 투박해서 스프링처럼 탄력이 있다.
국물 속에서 엉켜있던 면발을 꺼내면 스프링처럼 튀어 콧등을 친다. 그래서 콧등치기국수다. 구수하다. 정선황기막국수(033-563-0563), 동광식당(563-0437) 등이 잘한다. 산나물, 콩나물, 갓김치가 곁들여지고 황기를 넣고 삶은 족발 고기도 몇점 나온다. 국수로 모자라다 싶으면 국물에 말아 먹을 밥까지 준다. 강원도의 인심이다.
화암 8경(오후 1시)
정선에서 동해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42번 국도를 타고 백복령을 넘는 것. 그런데 살짝 방향을 바꾼다. 정선읍에서 59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간다. 10㎞ 가량 가면 왼쪽으로 424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이 길로 12㎞ 구불구불 달리면 예사롭지 않은 풍광을 만난다.
화암 8경이라 불리는 정선의 절경지대이다. 화암약수, 거북바위, 용마소, 화표주,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등이다. 모두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모자란다. 꼭 보아야 할 곳은 화암동굴이다. 화암 8경에는 들지 않지만 야트막한 산에서 화암마을을 내려다 보는 화암소나무도 볼만하다.
백두대간 넘기(오후 4시30분)
424번 지방도로를 계속 타고 고개를 넘는다. 오두재라는 고개이다. 35번 국도와 만나 우회전, 약 6.5㎞ 달리면 숙암리이고 왼쪽으로 다시 424번 지방도로가 시작된다. 길의 꼭대기는 댓재. 이 고개를 넘으면 삼척시로 들어간다. 아주 아름다운 길이다.
북평장(일요일 오전 10시)
마찬가지로 오전 10시께야 장이 제대로 선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모두 돌아보려면 2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가장 볼만한 곳은 역시 어물전. 싱싱한 동해의 해산물이 집결한다. 요즘에는 문어, 가자미, 숭어, 대게 등이 많다. 어물전 아주머니들의 손놀림을 보다보면 눈알이 핑핑 돌아간다. 물고기를 다루는 데에 이력이 난 분들이다. 비늘을 손질하고, 내장을 꺼내고, 토막치는 손놀림이 거의 예술이다.
동해ㆍ삼척 둘러보기(오후 1시30분)
동해ㆍ삼척 지역은 관광자원의 보고이다. 동해시와 맞붙은 강릉시의 정동진에서부터 망상해수욕장, 촛대바위로 유명한 추암해수욕장, 삼척의 새천년해안도로, 관동팔경의 하나인 죽서루, 남근목으로 유명?해신당 등등. 역시 시간이 모자라 모두 돌아볼 수 없다. 삼척시는 동굴의 도시이다. 가장 이름 난 동굴은 환선굴. 일정이 빠듯하지만 꼭 보아야 한다.
동해안에서 돌아오는 길은 가장 편한 길을 택한다. 동해에서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강릉까지 북상한 뒤에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한다.
/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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