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적 의미로 포기란 일을 중간에 그만두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완성하지 못한 채 마친다는 것은 불쾌하며 수치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나는 인생에서 포기하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생각을 바꾸게 됐는데, 그것은 바로 내가 그 어떤 것을 포기하면서 오히려 기쁨과 여유를 맛보았기 때문이다.내가 최근에 과감하게 포기한 것은 논문 쓰기 였다. 물론 이 논문은 학위를 받기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스스로 연구해 볼만한 주제라고 여겼기 때문에 시도한 것이었다. 그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다.
나름대로 정한 마감일이 다가오자 나는 초조해졌다. 다른 일을 할 때나 휴식을 취할 때조차 논문을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 잡혔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포기하자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고 과감히 컴퓨터에 저장된 논문 파일을 삭제했다. 삭제 클릭을 누르자 논문을 쓰기 위해 준비한 자료는 물론이고 양식조차 영원히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불쾌함 보다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과 환희를 느꼈다.
나 자신의 나약한 의지력을 탓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을 미리 포기함으로써 다른 일에 기울일 시간이 생겼다는 기쁨 때문이리라.
생각해 보니 포기함으로써 얻는 이익이 꽤나 많았다. 나처럼 약간의 비만이 있는 경우 밤에 먹는 간식을 포기함으로써 건강해질 수 있으며, 나 자신만의 고집을 버리고 타협을 배움으로써 인간 관계가 더욱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언론 매체에서 사건, 사고를 접할 때 가해자나 피해자가 조금만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이나 행동을 포기했다면 비극이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는데 나의 포기는 바로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물론 매사를 포기하는 사람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꼭 해야 될 것 혹은 해야만 하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그런 것은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붙잡고 놓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미래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런 사람은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 올 때 가진 것 중 아무 것도 포기 못해 기회를 잡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나는 포기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바꾸었다. 포기는 '부정적인 결과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대안'이다.
/onemore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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