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배 그물에 줄지어 걸려 올라오는 도루묵,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한잔 술을 기울인 후 다음날 맛보는 꾹저구탕, 강원도만의 독특한 한정식 모밥, 이미 그 명성을 자랑하는 초당두부와 물곰탕….강원도의 음식이 제철을 맞았다. 대표 메뉴인 도루묵이 대량으로 잡혀 식탁을 풍성하게 하고 덩달아 연탄불에 구워 먹는 양미리도 입안에 침을 돌게 한다.
2년 연속 큰 수해를 입으며 시름에 잠겼던 강원도 동해안이 겨울 먹거리 관광으로 일반인들을 부르고 있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철지난 바닷가에 앉아 색다르면서도 맛깔스런 지역 먹거리들을 즐겨보자.
“도루묵 사~~셔!”
도루묵이 가득 담긴 큼지막한 대야를 머리에 인 아낙네들이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외치던 소리. 지금은 사라졌지만 어릴 적 익숙하게 듣던 그 소리가 지금 강릉에서 다시 울려 퍼진다.
그간 주로 일본에 수출되었던 도루묵은 값이 비싸 ‘금도루묵’이라 불릴 정도로 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수확량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가격이 예년보다 많이 내렸고 그런 만큼 식탁에 오르는 빈도도 잦아졌다.
제철 맞은 도루묵
도루묵을 먹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11~12월. 도루묵이 가장 많이 잡히는데다 산란기여서 알도 크다. 요즘 강원 강릉 속초 고성지역 포구들은 도루묵 풍어로 활기를 띠고 있다. 속초시의 경우 올해 도루묵 어획량은 280여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0톤에 비해 4배 이상 늘어났다. 주문진, 고성 등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
포구에서의 도루묵 위판 가격도 덩달아 떨어졌다. 일본에 대량 수출되던 5년 전 한두루미(20마리) 당 2만원을 훌쩍 넘었으나 지금은 1만5,000~2만원 선에 팔리고 있다.
도루묵 요리 종류
도루묵 요리는 보통 세가지. 도루묵 찌개와 구이, 그리고 튀김이다. 이 중 사람들이 가장 즐겨찾는 메뉴는 찌개. 국물 맛이 담백하면서도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생태찌개가 시원하고 맛이 깊다면 도루묵은 얕은 맛이라고나 할까. 보통 파와 마늘 고춧가루 양파에 갖은 양념을 넣고 간을 맞춰 끓인다. 굵은 소금은 시원한 맛을 내기 위해, 후추는 비린내를 없애기 위해 뿌려 준다. 고소함을 느낄 수 있는 구이와 튀김도 단골 메뉴다.
도루묵, 알 먹는 재미
특히 도루묵은 고기보다 알 먹는 맛이 그만이다. 12월까지 산란기여서 암컷의 배를 까 보면 알집이 큼지막하다. 노릇노릇한 색깔에 명태 알 보다 훨씬 커 보이는 알은 구수한 맛과 함께 오돌오돌 씹는 재미도 준다. 도루묵 전문 식당 어부촌의 김남현씨는 “알을 먹기 위해 도루묵을 찾는 사람이 더 많다”며 “다른 생선에 비해 살점이 그리 많지 않지만 살점을 발라 씹어 먹으면 부드럽고 연하다”고 일러준다.
양미리도 한 점.
연탄불에 구워 먹는 것으로 유명한 양미리 역시 제철(11~12월)을 만났다. 속초 북항 등 동해안은 양미리의 본 고장.
이 지역에서는 밑반찬으로 많이 해 먹는데 도루묵 전문 식당에 가면 양미리 구이를 해 준다. 양미리 한가지만 먹으면 질린다고 보통 가재미 임연수 등과 함께 모듬구이로 나오는 것이 보통. 밑반찬으로는 졸여서 많이 먹는데 찌개에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담백하면서도 비린내가 없다.
도루묵 전문 식당에 가면 이들 요리를 다 맛 볼 수 있다. 강릉시의 주문진 수산물백화점 인근에 어부촌(033-662-8352)을 비롯, 도루묵 전문 식당들이 몰려 있다.
도루묵의 유래
선조가 임진왜란때 피난을 간 지역에서 한 어부가 생선 한마리를 진상해 수라상에 올렸다. 선조는 그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이름이 무엇인가 물었더니 어부가 '묵'이라고 답했다. 이를 들은 선조는 "맛에 비해 이름이 형편없다"며 '은어'라고 고쳐 부르도록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선조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그 생선을 찾았다.그러나 전란중에 먹던 맛이 전혀 아니었다. 그래서 "도로 '묵'이라고 해라"고 했는데 그로 인해 그 생선의 이름이 '도로묵'이 되었다가 '도루묵'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강릉 주문진=박원식기자 parky@hk.co.kr
초당두부
‘부드럽고 구수하며 감칠맛까지 나는 두부.’ 바로 강릉 초당두부다.
두부 맛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초당두부와 일반 두부의 차이는 간수에 있다. 일반 두부가 염도 70%의 소금물을 사용하는데 반해 초당마을에서는 염도 43% 내외의 해저 암반수를 쓴다. 이것이 두부를 부드럽게 응고시켜 부드러운 두부를 만들어 준다.
초당두부 요리는 순두부 백반과 두부전골, 모두부 등이 있다. 같은 재료인 콩비지와 된장 맛도 간단치 않다. 그릇에 둥둥 떠 있는 듯한 순두부에 양념간장을 풀어 먹으면 짭짜름한 것이 입맛을 돋워준다. 간장 대신 촌된장을 곁들여 먹는 맛도 걸죽하고 진하다.
빨간 양념이 뿌려진 모두부도 기대와 달리 부드러워 술술 목에 넘어간다. 야채와 양념을 넣고 보글보글 끓인 두부 전골도 마찬가지.
초당마을에는 동화가든순두부(033-652-9885) 고부 순두부(653-7271) 등 두부집들이 몰려 있다. 동화가든 순두부는 특히 계약재배로 100% 우리콩만을 사용한다. 3년 이상 묵힌 된장을 끓여낸 촌된장은 검붉은 색깔만 봐도 시골 냄새가 난다. 따로 띄우지 않고 그대로 끓여낸 콩비지는 비위가 약한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조밥과 가자미를 함께 삭힌 가자미밥식해도 이 집의 별미이다. 나이에 비해 워낙 젊게 보이는 안주인 안송자(53)씨는 “콩을 많이 먹어서 젊은가 봐요”라고 말한다.
/강릉=박원식기자
모밥
경포호의 새우, 물미역, 시종지떡…, 강원도식 한정식 모밥을 시키면 함께 나오는 반찬이다.
옛날 모심는 날, 일을 끝낸 일꾼들은 동네 집집마다 한가지씩 내온 음식들로 차려진 커다란 밥상을 받았다. 이 상의 이름은 모밥 혹은 ‘질상’. 논 주인이 한턱 내는 이 날은 당시 일꾼들에게 축제날 중 하나였다.
강릉의 모밥전문 식당 ‘서지 초가뜰’은 그때 그 식단을 재현하고 있다. 300년 넘은 고옥을 개축한 이 집은 화려하진 않지만 푸짐했던 당시 서민들의 음식들을 식탁에 올린다.
파종때 남겨뒀던 볍씨만을 모아 찐 시종지떡, 경포호수에서 잡은 ‘부새우’찜, 떡갈잎에 싸주는 꽁치, 나무로 만든 대접인 두가리에 담아 나오는 밥, 고춧잎에 묻힌 무말랭이 김치 등 10여가지의 당시 농사 일바라지 음식이 현대식으로 선보인다. 햇쑥과 말린 호박, 말린 감에 팥과 콩을 듬뿍 넣어 찐 시종지떡과 찜 혹은 삭혀서 먹는 부새우의 맛은 좀체 경험하기 힘든 이 곳만의 진미다. 1만원 (033)646-4430
강릉 시내의 한식당 ‘임영관’에서는 강원 산물로 장식된 상차림을 받을 수 있다. 명태 내장으로 끓인 곤지탕, 명태아가지젓갈인 서거리젓, 물미역, 도루묵, 초당 두부 등이 대표 식단. 무를 함께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곤지탕은 국물이 맑으면서도 시원하다. 명태 아가미와 무를 함께 삭힌 서거리젓은 삭힌 맛이 독특하다. 생미역을 굵은 소금에 살짝 주무른 물미역은 짜거나 뻣뻣하지 않다.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거나 생굴에 싸서 먹는 맛이 일품이다. 1만5,000원 (033)642-0955
/강릉=박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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