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인훈(67·사진)씨가 계간 '황해문화' 겨울호에 단편소설 '바다의 편지'를 발표했다. 1984년 발표한 '달과 소년병' 이후 19년 만의 단편이고, 장편 '화두' 이후 8년 만의 신작이다.최인훈씨가 오랜 침묵 끝에 발표한 이 소설은 엄연한 분단 현실과 냉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담고 있다.
'바다의 편지'는 바다 속에서 목숨을 잃은 한 젊은이가 완전히 생명이 다하기 전 어머니에게 전하는 말과 마음의 독백이 교차하는 내용이다. 간첩 임무를 띤 이 젊은이는 일인용 잠수정을 타고 육지에 닿으려다 피격돼 잠수함과 함께 수장된다. 다가온 죽음에 절망하던 화자가 자신이 수장되는 바다가 '임무를 위한 배들이 숨어 다니는' 분단의 장이 아닌, '아름다운 돛배들의 놀이마당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고 소멸을 받아들이는 게 전반부의 내용이다.
후반부는 '아우성치는 홍수소리' 같은 세상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이다. '양복 입은 무당들, 높은 담을 지키는 이국종 맹견들, 헛소리를 가르치는 학교들, 주택부금을 계산하는 전도사들, 씨돼지처럼 살찐 왕과 왕비들, 그들을 지키는 순라꾼들'로 오염된 세상에 대한 고통과 분노가 숨김없이 드러난다.
함께 실린 작품 해제 '영원한 경계인의 문학적 유서'에서 평론가 김명인씨는 "최인훈에게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는 잠수부는 인생과 세계를 탐사하여 그 비극적 아이러니를 확인하는 문제적 주인공"이라고 설명했다. '바다로 내려가는 잠수부'라는 뼈대는 최인훈씨의 작품 세계에서 오랜 뿌리를 갖고 있는 모티프다. 1962년 중편 '구운몽'에 실었던 자작시 '해전(海戰)'에서 잠수함에 탑승한 젊은 수병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았고, 소설 '광장'의 1973년 판 서문에서 "나는 12년 전 이명준이라는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工房)에서 제작해 삶의 바닷속에 내려보냈다"고 말했으며, 1960년대 초반 발표한 '낙타섬에서'라는 단편에서 "나는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는 욕심이 하나 있다. 잠수함의 승무원 얘기"라고 밝혔다.
작가는 이에 대해 '광장' 서문에서 "우리가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소설가는 인생을 모르면서도 주인공을 삶의 깊이로 내려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살아오는 경우 그의 입으로 바다 밑의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요,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그의 연락이 끊어진 데서 비롯하는, 그 말의 깊이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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