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하나. 20일 삼성전자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로 예정됐던 57인치 액정표시장치(LCD) TV 발표회가 돌연 연기됐기 때문이다. 덕분에 겨울 비를 뚫고 천안사업장에서 서울로 올라온 개발팀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삼성전자측은 갑작스런 연기사유로 LCD TV 전시에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날 이건희 회장 주재의 삼성그룹 디지털미디어 전략회의가 같은 날에 보도되는 점을 감안해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두 사안 모두 삼성의 장밋빛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작금의 재계 분위기를 감안해 삼성이 너무 잘 나간다는 인상을 풍길 필요는 없지 않느냐"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눈치 아닌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풍경 둘. 모 그룹 핵심관계자는 이날 지인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지난해 대선당시 야당에만 정치자금을 제공해 검찰이 비자금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부랴부랴 확인에 나섰지만, 곧 사실 무근으로 드러났다.
LG홈쇼핑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에 이어 금호그룹 박삼구 회장이 소환조사를 받는 등 검찰의 대기업 정치자금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자 재계에는 어느새 밑도 끝도 없는 '비자금 괴담'이 급속도로 유포되고 있다.
"모 그룹 핵심관계자가 잠적했다." "모 그룹이 검찰과 빅딜에 나섰다." 심지어 경쟁 기업과 관련된 역 정보를 흘리는 기업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부상, 각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글로벌 경제는 지금도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기업 정보팀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검찰 수사를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우리 기업의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박천호 경제부 기자 tot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