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이성을 만난다는 건 누구나 품을 법한 판타지다. 그러나 그런 판타지를 실천에 옮기면서 얻게 되는 흔한 체험담은 ‘판타지 있는 곳에 사기가 있다’는 것일 터이다. ‘버스데이 걸’ (Birthday Girl)은 ‘이런 여자라면 사기를 당해도 좋다’고 믿는 남성에게나, ‘연기의 여신’ 니컬 키드먼의 매력에 흠뻑 젖어들고 싶은 이들 모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평범하다 못해 지루해 보이기까지 하는 10년차 은행원 존 버킹검(벤 채플린)은 낮에는 은행 금고 열쇠 보관자로 일하고 밤에는 변태비디오 시청과 인터넷 서핑으로 하루를 소일한다.
벤은 ‘러시아로부터 사랑을’이란 웹사이트에서 얼굴도 모르는 신부를 주문했다가 상상도 못할 러시아산 미녀 나디아(니컬 키드먼)와 마주한다. 영어는 한 마디도 못하지만 설거지에 스웨터 짜기, 침대에 묶고 섹스하기 등 벤이 꿈꾸던 일을 척척 해준다.
그러나 한 성실한 은행원이 인생을 망가뜨리는 데는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니컬 키드먼은 ‘투 다이 포’ 이후 오랜만에 악역을 맡아 진정한 ‘꽃뱀’의 자세를 보여준다. 러시아인 행세를 하는 프랑스와 호주 출신 배우의 능청이 볼만하다. 감독 제즈 버터워스. 18세가.
/이종도기자ecri@hk.co.kr
하트 브레이커스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는 ‘터미네이터 2’의 린다 해밀턴과 더불어 영화 속의 가장 인상깊은 여전사로 꼽힌다. 그러나 여전사도 나이를 먹는 법. ‘하트 브레이커스’(Heartbreakers)에서 시고니 위버는 이제 성년이 된 딸까지 둔 ‘퇴물’ 꽃뱀으로 나온다. 하지만 ‘스캔들’에서 나이 든 이미숙의 매력이 앳된 얼굴의 전도연으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녔듯, 시고니 위버도 이 영화에서 결코 나이에 주눅들지 않는다.
맥스(시고니 위버)는 부자들과 결혼해 약점을 잡은 후 이혼을 하는 것으로 생활을 꾸려온 꽃뱀. 손을 씻으려던 그는 막대한 세금을 추징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딸 페이지(제니퍼 러브 휴이트)까지 독립을 선언한다. 맥스는 딸을 설득, 부자들의 득실거리는 팜비치로 가서 마지막 ‘한 건’을 꿈꾼다.
러시아 여성으로 위장한 시고니 위버가 담배회사 사장(진 해크먼)을 유혹하기 위해 러 시안 레스토랑에서 벌이는 해프닝이 압권. 무조건 “다(러시아어ㆍ예스)”를 외치다 날고기 스테이크를 시키고, 결국 무대에서 러시아어로 노래까지 부르게 되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이 꽤 흥미롭다.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사랑 얘기가 진부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데 반해 전 남편 레이 리오타, 옛 동료 앤 밴크로프트 등 중년 배우들의 연기가 훨씬 매력적이다. 감독 데이빗 머킨. 18세가.
/박은주기자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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