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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의 에너지 강물처럼 흐르다/민중미술 대표작가 신학철 12년만에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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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의 에너지 강물처럼 흐르다/민중미술 대표작가 신학철 12년만에 개인전

입력
2003.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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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서스펜스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뭔가 대상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을 때 이야기할 힘이 나는데 말이죠.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서민들의 에너지'로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바뀐 세상에서도 내가 바라보는 대로의 진실을 보여주려 합니다."1980년대 이후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해 온 작가 신학철(60·사진)씨가 12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21일부터 문예진흥원 마로니에미술관이 여는 '신학철―우리가 만든 거대한 상(像)' 전은 흩어져 있던 신씨의 작품 120여 점을 망라한 그의 회고전 성격을 띤다. 마로니에미술관이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의미 있는 궤적을 보여주고도 제대로 주목되지 못한 작가들을 초대해 여는 '대표 작가 초대전'의 일곱번째로 열린다.

91년 이후 개인전 형식으로는 처음인 이번 전시를 앞두고 만난 신씨는 "조금 겁이 난다"고 '촌놈' 티를 벗지 못한 어눌한 투로 말했다. 그는 지난해부터 제작한 작품 일부에 사인으로 '촌놈'이라고 써넣고 있다. "2000년 무렵부터 이라크전으로 상징되는 국제정치 현실과 우리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작업의 주제입니다. 향수를 다루면서 나는 여전히 '촌놈'이란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어떻거나 그는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당대 현실의 역사적 의미를 예리한 시선과 넘치는 열정으로 표현해 온 작가다. "신학철 이전까지 한국 현대미술은 역사―사회적 현실에 관한 한 미학적 계엄령 아래 놓여 있었다. 이 질곡의 어둠을 뚫고 돌연 신학철이 나타난 것이다." 평론가 성완경씨의 말처럼 1981년 열린 '서울 방법전'에 출품한 신씨의 '한국 근대사 3'은 한국 현대미술에 '자생적 충격'을 던져준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모노크롬 회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던 한국 화단에서, 돼지머리의 형상에 한국의 역사사회적 사건들을 포토몽타주로 만든 이 작품을 보고 평론가 김윤수(현 국립현대미술관장)씨는 " '비일상의 일상화'라는 덫에 걸려있던 한국 화단에서 그 뒤집혀진 관계를 돌려놓은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후 신씨는 40여 점의 '한국 근대사' '한국 현대사' 연작으로 80년대의 정치현실과 맞선다.

이번 전시에 나오는 2002년 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는 그의 이런 작업세계를 압축한 작품이라 할 만하다. 작품 길이 20m, 120호의 화폭 16점으로 구성된 대형 그림이다. 시골에서 상경한 갑돌이와 갑순이, 즉 우리 사회의 평범한 남녀를 주인공으로 해서 이들이 경험한 사건들, 거대도시로 성장해 가는 서울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구성했다.

기존 그의 한국근현대사 시리즈가 수직으로 용솟음치는 소용돌이의 구조였다면 이 작품은 강물이 흘러가는 듯한 수평 구도로 이뤄졌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마로니에 미술관은 이 작품에 표현된 역사, 사회적 사건들을 보여주는 신문, 잡지, 광고전단, 사진 등을 따로 인덱스로 만들어 작품의 내용과 제작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전시에는 이밖에도 신씨가 대학 시절인 66년 그린 자화상부터 이라크전을 다룬 최근의 작품까지 그의 작업 이력을 연대별로 보여주는 오브제, 콜라주, 설치, 포토몽타주, 회화 작업이 체계적으로 조망된다.

10년 넘게 미술 표현의 자유와 검열 문제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던 87년 작 그림 '모내기'를 둘러싼 문제는 전시장 내 소갤러리에 따로 소개됐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무죄와 유죄를 오가다 대법원에서 선고 유예 판결을 받고 2000년 사면된 이 사건은 유엔인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전시 문의 (02)760―4605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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