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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금강산과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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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금강산과 현대

입력
2003.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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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리나'는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대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말로 시작된다. 최근 풍파를 겪고 있는 몇몇 재벌 집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100여년 전 러시아의 대문호가 갈파한 이 말의 의미가 실감 있게 다가온다.지금은 몰락한 한 재벌의 전 부인은 자전적인 소설에서 불행한 결혼생활과 재벌회장의 사생활을 낱낱이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인기 연예인이 다수 포함된 재벌회장의 바람기와 극심했던 고부간의 갈등 등 재벌가의 어두운 면모가 여과 없이 드러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밤중에 한강 둔치에 갔다가 고급 외제차를 도난 당했던 인기 탤런트 출신의 백화점 재벌 부인이 19일 이혼했다는 소식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다.

정몽헌 회장의 투신 자살 이후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현대그룹의 모습도 시숙과 질부간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불행한 가정'의 한 유형일 듯 싶다. 정회장의 부인 현정은씨가 시숙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한 지난 달부터 지금까지 양측은 경영권 확보를 위한 불꽃 튀는 지분 늘리기 경쟁을 해왔다.

KCC의 '무혈입성' 으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경영권 분쟁은 현 회장이 현대 엘리베이터를 국민기업화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고 있다. 이른바 '시숙의 난'으로 현대가가 또 가족 상쟁의 진흙탕 싸움에 돌입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현대그룹 계열사 주가가 하한가로 떨어지고 KCC의 주가도 곤두박질 친 것도 주주의 이익을 무시한 양측의 유혈전쟁이 부른 자업자득일 터이다.

그러나 정말 안타까운 일은 18일로 5주년을 맞은 금강산 관광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는 점이다. KCC는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겠다"며 현대그룹을 인수할 경우 금강산 관광사업을 포기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무작정 사업을 강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돈 안되는 사업은 접겠다'는 KCC측의 얘기는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은 단순히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 사업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화해와 협력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5년 전 승객 882명을 태운 금강호가 분단 장벽을 허문 이래 56만여명이 해로와 육로를 거쳐 금강산을 다녀왔다.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1998년만 해도 외환위기와 금창리 핵위기가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던 때였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간 상호 이해와 교류의 일보를 내딛게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서해 교전에도 불구하고 동해에서 오간 관광선이 남북 긴장을 완화시키는 완충 역할을 했다는 것은 남과 북이 모두 인정하고 있다. 남북 당국간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이 대부분 금강산에서 이뤄졌다. 이산가족 면회소도 금강산에 세워질 예정이어서 금강산은 이미 남북간 화해와 협력, 만남의 장으로 자리잡았다.

현대가의 경영권 다툼이 어떻게 결론 나느냐에 따라 금강산 사업의 미래도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나 누가 경영권을 장악하든 금강산 관광이 갖는 역사성과 상징적 의미를 잘 새겼으면 한다. 금강산관광은 이미 현대만의 사업이 아닌 '국민관광적'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창 민 경제부 부장대우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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