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뒤 지금까지 정부와 각 지하철공사가 취한 조치를 살펴보면 왜 우리나라에서 똑 같은 대형참사가 자꾸 되풀이되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전국의 지하철은 참사를 겪고도 별로 달라진 게 없고, 앞으로도 수년 동안 승객들을 위험에 노출시킨 채 운행할 전망이다.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껏 단 1량의 전동차에서도 불에 잘 타는 내장재가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감사원은 9월 말 전국 지하철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구 참사 당시 인명 피해를 키운 가장 큰 요인으로 전동차 내장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재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데다 전동차를 구매할 때 화재에 대한 안전성보다는 경제성과 외관을 중시하는 바람에 내장재의 재질이 화재에 극히 취약한 합성수지로 바뀌었고, 이 때문에 전동차 12량이 순식간에 전소되고 유독가스가 많이 배출됐다는 것이다. 내장재 가운데 내장판은 86년부터 단열재는 92년부터 각각 값이 싼 재질로 변했다.
감사원은 특히 100여차례에 걸쳐 내장판·단열재에 대해 실시한 난연성능 시험 결과 대구지하철의 경우 내장판은 100%, 단열재는 71%가 불합격이었다는 점을 해당 기관에 통보했다. 서울지하철 5∼8호선과 수도권 전철의 내장판 불합격률이 각각 74%, 60%였고, 서울지하철 1∼4호선, 5∼8호선의 단열재도 불합격률이 각각 77%, 66%였다. 현재 운행중인 지하철 대부분이 화재에 극히 취약한 상태인 셈이다.
그러나 내장재 교체작업은 더디기만 하다. 철도청이 지난달 23일에야 1단계 계약을 완료했을 뿐 나머지 기관들은 이제서야 발주 또는 조달청에 계약을 의뢰한 상태다.
특히 내장판과 단열재를 최우선적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감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하철공사는 의자 등을 먼저 교체키로 결정해 그 배경을 놓고 의혹마저 일고 있다. 이미 감사원은 "일부 업체가 임의로 개인사업자에게 재하도급을 내줘 불량 내장판을 납품했는데도 관련 기관들이 이를 그대로 두고 있었다"며 유착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런데도 서울지하철공사는 "내장재 교체 순서는 기관 자체 결정사항"이라며 의자부터 교체할 방침이고, 광주도시철도측도 단열재·의자 규격서의 승인이 부적정하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의자 교체 계획만 내놓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그나마 지금 부착된 내장재도 공급업체의 부도로 인해 하자보수를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다.
339명의 시민이 숨지거나 다친 대구에서조차 지하철의 안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대구지하철 공사는 지난 6일에야 겨우 새 내장재에 대한 1차 입찰을 실시했다. 공사의 한 관계자는 "지하철은 지난달부터 다시 운행되고 있지만 의자에 약간의 방염처리를 하고 안내방송과 야광스티커 부착 등의 조치만 취했을 뿐 달라진 게 없다"고 털어놓았다.
/양정대기자 torc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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