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0월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전임교수 32명 중 28명이 미국 박사. 연세대 경제학과 전임교수 29명 중 28명이 미국 박사. 고려대 경제학과 전임교수 20명 중 17명이 미국 박사. 서강대 경제학과 전임교수 전원 미국 박사.' 영어 공용화론이 공공연히 제기되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미국화와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학계의 미국 편중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세계가 대부분 그렇게 되어가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정치 경제 문화의 대미 종속을 쉽게 말하면서도 학문의 미국 편향에는 눈감아도 되는 것일까?학술단체협의회는 21일 오전 9시30분부터 성공회대에서 '우리 학문 속의 미국―미국적 학문 패러다임 이식에 관한 비판적 성찰'을 주제로 22개 학회 연합 심포지엄을 연다. 국내 학계에서 미국식 학문 패러다임이 어떤 지위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대학 교육 체계와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짚어보고 주체적 학문 발전의 길을 모색하는 자리다.
심포지엄의 문제의식은 국내 지식인 사회 형성 과정의 문제점을 대학 체제 형성과 관련해 살펴본 김정인 한국국가기록연구원 책임연구원의 '해방 이후 미국식 대학 모델의 이식과 학문 종속'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오늘날 대학사회와 학계는 친미사대주의의 가장 충실한 구현자"이며 "1950년대부터 학계에 터를 잡기 시작한 미국 유학파는 맹목적으로 미국 학문을 소개하기 시작했고, 이후 대학 개혁이 거듭될수록 대학은 점점 미국화해갔다." 김 연구원은 "주체적·자생적 자질에 바탕해야 할 학문은 미국 교육의 세례를 받은 이들에 의해 미국식을 전범으로 한 서양의 것이 경쟁적으로 수용되었고 대학과 학문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 역시 미국에 전당 잡혀 있는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한국 교육학의 지배세력과 미국'을 통해 국내 교육학계의 사정을 소개한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미리 공개한 발표문에서 "국내 교육학계는 독자적으로 학문 후속 세대를 양성하지 않고 있다"며 "미국 유학 출신 교수를 중심으로 한 독점체제가 더 익숙하고 달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주체적 학자 양성의 필요성과 방안'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 학위자 위주의 학자 충원은 연구 방법론의 획일화 학문 체험의 미공유 대학원 교육의 부실화 등의 폐단을 낳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내에서 대학 학부만 마치고 미국에 유학 가서 박사 학위를 받아온 사람을 교수로 채용하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국내 대학은 학부 중심 대학을 벗어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대안으로 교수 임용 때 '국내 박사 할당제'를 검토하고 국내 대학원생의 학습·연구 여건 개선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포지엄에서는 이 밖에도 '미국 주류경제학과 한국 경제학의 위기' '한국 여성학의 발달과 서구 페미니즘' '한국 영화산업과 할리우드 영화' '탈식민 시대의 주체 형성과 타자성의 경험' 등이 발표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한국 정치학의 미국 편향성과 한국 정치
/정영태 인하대 교수
정치 이론이나 방법론의 미국 정치학에 대한 의존도는 다른 어느 분야보다 높다. 1980년대 초까지 한국 정치학을 지배한 방법론은 구조기능주의와 행태주의이며 주요 이론은 근대화 이론, 정치발전론,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 등이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한국 현실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지배구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했다. 한국의 정치학은 미국 정치학과 연관을 갖거나 그 영향을 받음으로써 우리 문제를 우리 시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이론이나 정책을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국의 미국에 대한 종속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미국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학계나 교육 현장, 정책결정과정에 도입·실천함으로써 우리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에 더 봉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학의 지적, 인적 지배와 "한국적 사회학"의 지체
/윤상철 한신대 교수
국내 사회학계에서 국내 박사와 미국 박사의 비중은 60대 연구자의 경우 국내 박사가 더 많지만, 50대는 미국 박사가 월등히 많고, 40대는 양자가 거의 근접하다가 30대는 국내 박사가 더 많다. 30대의 경우 잠재적 미국 박사들이 미국에 체류함으로써 통계에 잡히지 않거나, 사회학은 외국 유학을 할 정도로 투자 가치가 높지 않다고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내 박사와 미국 박사는 국내 문헌에서 문제 관심을 이끌어내는 데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론적 자원은 거의 미국 문헌에 의존하고 있어 학문 재생산 방식이 국내의 문제 관심을 외국 이론에 적용해 보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정체성과 미국 문화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 국가적 혹은 민족적 문화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미국 문화는 언제나 문젯거리다. 단지 시장과 산업으로 보자면 한국은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에 이르고 자국 대중음악이 70% 이상의 시장을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독자적이다. 하지만 문화적 정체성이라는 문제를 놓고 보면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미국 문화는 한국 문화의 현재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외부 요소다. 미국 문화는 해방 직후 강력한 근대성의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후 모방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제는 내재적 문화로 자리잡았다. 문화 형성의 기본 틀인 '통합'과 '차이'가 상호작용하며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문화의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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