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중인 국가균형발전특별법안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경기도 등 수도권의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반대와 반발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 법안에는 민간경제부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려는 의사가 실려있기 때문이다.원론적 이야기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역격차 같은 경제문제는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지역 간 경제 불균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원리에 의해 수렴·해결된다는 사실이 학계의 실증적 연구로 입증된 바 있다. 특별법의 제정에 앞서 정부는 경제문제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위환위기 직후 DJ정부는 대폭적인 규제완화정책을 도입하면서 가능한 한 시장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경제주체 간에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정권이 바뀐 지금, 외환위기 당시 만큼이나 경제 상황이 어려워 각계의 불만이 분출되자 정부는 다시 시장 개입의 유혹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적은 가운데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으나 국토의 균형발전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지역불균형은 고치기 어려운 사회문제로 여겨지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보면 그리 심각한 수준도 아니다. 정치권에서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함에 따라 실제 이상으로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대내외적으로 경쟁력이 가장 강한 지역인 수도권은 이중 삼중의 규제 속에서도 성장의 엔진역할을 해왔다. 입지상의 이점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시장의 힘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물론 인구과밀과 도시난개발 등은 매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부는 행정수도 이전과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의 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지방의 경제발전까지 주도적으로 이끄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본다. 정부의 직접적 개입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경제 수준에도 걸맞지 않는다. 특별법 제4조1항에는 정부가 5년 단위로 균형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런 식의 접근방안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여건과 정부가 지향하는 분권화와도 한참 거리가 있다.
정부가 개발독재시대에나 통할 정책에 대한 유혹에 휩쓸려서는 곤란하다. 직접적 개입을 통해 국토균형발전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간접적으로 지방을 지원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인프라 측면에서 지역별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낙후지역에 재원을 우선 배정하는 것이다.
정부가 지방발전 방안까지 만들어 내려보내거나 지방의 개발문제에 간섭하기에는 우리 경제의 위상과 몸집이 너무 커졌다. 각 지방이 개개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간접 지원하는 것이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서 최선의 정책대안이다. 정부는 지방경제와 기업활동에 대한 통제자가 아니라 동반자이자 지원자 역할을 해야 하며, 진정한 의미의 규제철폐에 앞장서야 한다. 이러한 접근방안은 분권화와 함께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가 이미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과 200여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방안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서 국가균형발전특별법이 어떤 실효성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행정수도와 공공기관 이전만으로 수도권에서 150만명 이상의 인구가 빠져나간다. 이것만 제대로 해도 문제가 크게 해소된다.
국토개발의 불균형은 정부의 직접적 개입보다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간접적 정책으로 극복해야 한다. 국가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경쟁력 극대화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할 것이다.
최 근 희 서울시립대 교수·도시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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