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가을 밤, 서울 강남 오피스텔 5층의 자그마한 원룸. 좁은 방 안 가득 들어찬 5명의 남녀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한다. "크리스마스 연인에 어울리는 커플은 아무리 생각해도 양동근, 이나영 밖에 없어. 이미지가 딱이야." "안되면 봉태규라도 써."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벌써 크리스마스 얘기다. 이들이 바로 MBC에서 매주 월∼목 밤 12시50분(수요일은 밤 12시40분)에 방송되는 화제의 '한뼘 드라마'(PD 황인뢰)를 만드는 주인공들이다.이름하여 '스토리밴드'. 한 명이 아니고 6명의 작가군이다. 구성원은 10년 동안 카피라이터 생활을 하다 지금은 잠시 미국에 볼 일을 보러간 조철형(40), 월간 '페이퍼' 편집장 황경신(38), 엔터테인먼트회사 뮤직웰에서 영상PD로 일하는 김유평(34), 아리랑TV 방송작가 조혜선(25), '페이퍼' 객원기자 이인숙(25), 아주대 사회과학부에 재학중인 전기윤(22) 등 6명으로 집단의 문패를 내걸고 대본을 쓴 경우는 국내 방송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2월 황경신씨가 페이퍼에 쓰던 소설, 동화 등 짧은 글들을 독립영화로 만들려고 처음 모였어요. 그러다가 황PD께서 새 드라마를 기획하면서 평소 친분이 있던 저희에게 연락을 했죠. 그게 시작이에요." 대외 창구역할을 하는 김유평씨의 설명이다.
한뼘 드라마는 방영시간이 불과 5분. 시간이 짧다고 아이디어나 글이 쉽게 나오는 것은 아니다.
5분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매주 두 차례씩 조철형씨 자취방에 모여 회의를 하고 수 많은 아이디어 속에서 옥석을 골라 글로 다듬는다. 아이디어는 형식이나 장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쏟아낸다. 이 중에 적당한 것을 고르면 발제자가 대표집필을 한 뒤 수정을 한다. 이렇게 해서 매주 황PD에게 전달되는 대본이 5, 6편. 이 가운데 1, 2편을 황PD가 선택해 드라마로 만든다.
한 번에 5분 분량인 1회분을 쓰는 게 아니라 20분에 해당하는 1주일치(4회)를 써야 하므로 작업량이 만만치 않다. 그런데도 아이디어가 어디서 샘솟는 지 매주 5, 6편의 대본을 쓴다.
"주로 주변에서 얻기도 하고 개인의 경험담을 반영하기도 하죠. 최근 결혼한 이인숙씨의 신혼얘기가 좋은 예입니다. 신랑이 독일인이라서 문화차이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가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대본에 반영할 생각이에요."(김유평)
스토리밴드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 "사람들이 일상에서 겪는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일이나 한 번쯤 상상해보는 황당한 이야기들을 다룰 거에요. 그렇지만 잔인하거나 충격적인 사건 등 불쾌감을 주는 이야기는 절대 쓰지 않을 생각입니다."(황경신)
그래서 배우 선택과 음악을 중시한다. "방송 시간이 짧다보니 대사 대신 등장인물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배경 음악 등을 통해 느낌을 전달하려 하지요."(김유평) 배역은 황PD와 함께 선정하는데 되도록 신선한 얼굴을 찾는다. 3화 '나는 뱀파이어다'에는 홍은철 아나운서, 김원 페이퍼 발행인, 가수 한대수가, 4화 '런치박스세트'에는 영화감독 용이가 등장한다.
음악도 마찬가지. 이병우, 신이경 등 실력있는 음악가들에게 배경음악을 부탁했으며 앞으로 강기영, 조성우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드라마에 쓰인 이들의 음악은 내년 1월께 음반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끝으로 6명이 함께 일하면 수익은 어떻게 나누는 지 물어봤다. "원고료는 아직 받지 않아서 정확히 모르겠어요. 원칙은 매회 대표집필자가 50%를 갖고 1%는 사회에 좋은 일을 하기 위해 저금하고 나머지는 똑같이 나눠요."(김유평)
스토리밴드는 앞으로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을 할 계획이다. "우리끼리 재미있게 쏟아낸 이야기를 누군가 보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한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까지
한뼘 드라마의 제작에는 평균 2주가 걸린다. 방영 시간이 짧다고 쉽게 만들 것이라는 지레짐작은 금물이다.
스토리밴드에서 대본이 넘어오면 첫째 주에는 황인뢰PD와 작가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이때 황PD가 한꺼번에 넘어온 5,6개의 대본 가운데 2주치에 해당하는 두 가지 소재를 한꺼번에 확정한다. 대본이 선택되면 배우와 음악을 고르고 그 다음 회 소재를 의논한다. 현재 3화가 방송되고 있으나 이미 대본은 6화까지 확정된 상태다.
아이디어 회의로 한 주를 보내고 나면 두 번째 주에는 본격 녹화에 들어간다. 주초에는 캐스팅된 배우들이 모여 대사 연습을 하고 수,목요일에 촬영에 들어 간다. 각각 하루씩 할당해 한꺼번에 2주 분량인 40분의 영상을 찍는다.
촬영이 있는 날에는 제작진과 배우들이 아침부터 모여 밤을 홀딱 샌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세트보다는 야외촬영을 많이 하다보니 밤 장면이나 비 맞는 장면이 나오면 고생이 심하다.
촬영이 끝나면 주말에 영상과 어울리는 음악을 넘겨 받아 편집을 거쳐 마무리를 짓는다. 결국 TV에 나오는 5분 영상에는 제작진이 2주 동안 흘린 땀이 스며있는 셈이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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