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배수아답다'는 말처럼 울림이 분명한 말도 드물다. 그의 소설을 알고 또 그와 대화하고 난 다음에는 그 말이 어떤 '…답다'보다도 도드라진다는 데 공감하게 된다. 제36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은 배씨의 답말이 그랬다. "그럴 리가." 배수아다웠다. 그 짧은 두 마디도 시큰둥하게 들렸으니까. 거짓말이 아니라는 다짐을 받은 뒤 그는 "만일 사실이라면" 이란 말을 앞세워 약간 긴 설명을 했다. "죽을 때까지 상을 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그런 식으로 인생의 그림을 미리 그려놓았기 때문에 어쩐지 뭔가 허전한 느낌도 든다." 한국일보문학상은 그가 처음으로 받는 문학상이다.
수상작인 장편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문학과지성사 발행)에서 배씨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 허름한 골목길의 스키야키 식당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가난하기 짝이 없는 삶의 단면을 조각조각 이어 붙였다. 버터를 듬뿍 바른 토스트, 카페 '플라스틱'의 치즈케이크의 단맛이 침대의 얼룩덜룩한 고양이 오줌 자국, 너덜너덜 헤어진 속옷의 악취와 뒤섞인 소설이다. 그는 이미지를 문장으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온 작가다. 토스트와 케이크는 지금껏 알려진 배수아답지만, 오줌 자국과 낡은 속옷은 그답지 않다. 만져질 수 있는 삶의 실체에, 그것도 그의 작품에서는 지독하게 낯선 '가난'의 문제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는 게 그렇다. 심사위원들은 이를 두고 "배수아만의 감각적 문장에 녹록치 않은 주제가 담겼다"면서 "작가가 달라졌다,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신세대 감성의 소설가, 종잡을 수 없는 카오스 같은 글쓰기의 작가, 악마적 꿈꾸기의 작가…. 등단 10년 째인 그는 90년대 내내 우리 문학계의 '돌연변이' 젊은 작가로 꼽혔다. 평단에서 그의 작품은 늘 문제작으로 거론됐으며 독자층은 넓지 않았지만 지독한 '배수아 마니아'들이 존재했다. 그만큼 앞서 나갔다. "배수아씨가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것은 '문학 제도권'에서 그의 전위성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라고 평론가와 동료 작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 심사위원은 그를 두고 "족보가 없는 작가"라고 불렀다. 그만큼 선배 작가들의 작업에서 자유롭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씨는 이에 대해 "글을 쓰기 이전에 나의 독서량은 미미했고 그다지 고급 독자도 되지 못했다. 소설을 쓰고 한참이나 지나서야 글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자유로운 작가에게 문학의 거장들은 따뜻한 품을 내주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수업시간에 몰래 읽었던 책, 도서관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를 대고 읽었던 책, 대학시절의 도서관 개가식 열람실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읽었던 책들이 기억난다." 그 책의 저자들이 누구였느냐고 물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올더스 헉슬리의 '가자에서 눈이 멀어'라는 책이 가장 인상에 강하게 남았다! 그 책은 나에게 빛을 던져준 것이나 같았다. 조셉 콘라드의 '어둠의 핵심'도 인상적이었다." 이사를 다니면서 내내 갖고 있던 책이 번거롭다는 생각에, 그리고 그때는 어떤 물건에도 집착하지 않아서, 어느날 쓰레기 투입구로 모두 던져버렸다. 그때 '가자에서…'와 '어둠의 핵심'도 버려졌는데, 지금은 "꿈에서 만날 정도로" 그립단다.
병무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투잡(two―job)'이라는 말을 유행시켰던 그는 2002년 '특별한 이유 없이' 병무청을 그만뒀다. 경기 일산의 자택에서 오전에는 산책을 하고 오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가끔 컴퓨터게임도 한다(그는 "요즘 '안노1503'이라는 게임을 하는데 정말 재미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나는 그런 고요함을 깨뜨리는 방문 판매원의 벨 소리가 싫고 사람을 만나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의례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정말 싫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도 싫고 운전하는 것은 더 싫다."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나열한 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가끔 예술의전당에 간다고 했다가 이내 "하지만 너무 멀고 사람들의 기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힘들어서 집에서 듣는 편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붙였다. 배수아답다. 자신에게 소설은 문장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이라고, '나는 문장을 쓴다' 혹은 '그 문장의 의미를 다시 쓴다'가 '나는 이야기를 한다'보다 선행한다고 설명하는 그. 상금을 어디 쓸 것이냐는 질문에 "헉"이라고 짧게 외친 뒤, "아마존(인터넷서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베른트 알로이스 짐머만과, 다른 현대 음악가들, 젊은 연주자들의 음반을 마음껏 주문하고 싶다. 그리고 책도 갖고 싶다. 전세계 지리학 정보가 담긴 지도백과사전, 그런 것도."라고 답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 약 력
1965년 서울 출생 1988년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1993년 계간 '소설과 사상'에 단편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 발표 등단 소설집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바람 인형' '심야통신' '그 사람의 첫사랑', 중편 '철수', 장편 '랩소디 인 블루' '부주의한 사랑'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이바나' '동물원 킨트', 산문집 '내 안에 남자가 숨어 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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