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됐던 알 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미국의 강수로 근거지를 잃으며 와해된 듯했다. 곧 이어진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마저 무너지면서 알 카에다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대규모 테러와 함께 알카에다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듯 하다. 알 카에다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기 때문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2년이 넘게 알 카에다와 싸워온 미국은 '과연 알 카에다를 이길 수 있는가'라는 당혹스러운 질문에 마주치게 됐다.잇단 테러… 확대된 타깃
국제 사회가 알 카에다에 다시 주목한 것은 이슬람 단식월 라마단 기간인 11월 들어 이라크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폭탄 테러가 속출하면서 부터다.
테러는 치안 불안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이라크 뿐만 아니라 사우디 아라비아와 터키에서도 이어졌다. 각국 정보 당국은 각각 수십,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들의 배후에 알 카에다가 있다는 정보들을 제시했고, 외신들도 테러 목표나 수법 등 여러 면에서 알 카에다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알 카에다는 이미 "라마단 중 미국에 대한 '결정적인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알 카에다의 한 고위 지휘관은 "라마단 기간에 미국에 대한 매우 거대하고 과감한 공격이 이루어져 10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낳을 것"이라고 위협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추가 테러에 대한 위협을 한층 강화한 데 이어 이례적으로 이들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직접 밝히고 나섰다.
또 알 카에다는 동남아를 집중적으로 노렸던 지난해와는 달리 사우디, 터키 등 중동의 이슬람권 쪽으로 점차 방향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나아가 테러의 목표물을 일본, 영국 등 미국의 우방국들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전략?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알 카에다가 새로운 전략을 채택, 미국을 교란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알 카에다는 사우디에서 테러를 단행하고 또 한편으로는 점령 미군과 싸우기 위해 이라크로 잠입해 저항 세력의 공격을 주도하는 일 등을 모두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거대한 조직과 자금 없이는 불가능한 세계 각지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실행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9·11 이후 알 카에다를 지켜본 테러 전문가와 미 정부 관리들은 이러한 주장이 알 카에다의 새로운 전술에 입각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조직을 불가사의한 존재로 신비화하고 모든 사건에 자신들이 연루되어 있다고 여기게 함으로써 미국을 끊임 없이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으로서는 알 카에다의 실체에 대한 정보도 부족한 마당에 어느 것이 가짜인지까지 가려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을 상대로 조직적인 테러를 감행하기 힘들어진 알 카에다가 약화한 전력에 맞는 새로운 전략을 찾아냈고, 이는 조직 재건에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의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패한 대 테러전
미국 관리들은 알 카에다 지도자의 3분의 2 가량을 생포하거나 사살했으며, 3,000여 명의 요원들은 체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미 조직의 자금 줄도 끊었다며 알 카에다를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알 카에다가 아프간 본거지를 잃고 세력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로 볼 때 알 카에다는 아직까지도 큰 위협으로 남아 있으며, 결국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올해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 조직 알 카에다의 본거지를 파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조직원들이 100여 개국으로 흩어져 알 카에다 소탕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또 미국이 이라크 전쟁으로 이슬람 세계에서 큰 반감을 일으키면서 알 카에다의 대원 확충 능력이 강화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알 카에다 요원들은 소말리아에서 암약하고 있으며,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기업과 단체들도 유엔 제재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틈을 타 버젓이 활동하고 있다. 또 알 카에다는 은행을 통하지 않고 이슬람식 신용 거래인 이른바 '하왈라'를 통해 활동 자금을 마련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오리무중 빈 라덴, 속타는 美
미국의 필사적인 추적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46)의 종적은 현재까지 묘연한 상황이다.
미국은 2001년 10월 빈 라덴이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가니스탄을 공격, 알 카에다를 지원한 탈레반 정권을 패퇴시켰다. 빈 라덴 체포에 가장 근접했던 것은 2001년 말 아프간 공격 당시 빈 라덴의 무선 메시지를 포착했던 시기. 미국은 당시 빈 라덴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 토라보라 산악지대에 대한 대규모 폭격과 함께 공격을 감행했으나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이따금씩 빈 라덴이 사망했다거나 포위망이 좁혀지고 있다는 식의 정보들이 흘러나왔지만 현재로서는 그가 살아 있으며 미국은 그의 거처에 대해 확실한 정보가 없다는 쪽으로 상황판단이 굳어지고 있다. 아프간과 파키스탄 접경지역에 있다거나 이란 또는 특정 정부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인근 지역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으나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다.
가장 최근인 10월 18일 방송된 빈 라덴의 육성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를 언급했다. 이는 압바스 전 총리의 재임 기간인 올해 4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육성 테이프가 제작됐음을 의미한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이 육성이 진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미국이 빈 라덴의 대략적인 소재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미국 정보요원들이 알 카에다 조직에 침투하는 것이 극히 어렵고, 또 그가 위성전화 등 위험한 통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식으로 엄격한 보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테러조직이라는 특성상 최고 지도자인 그의 행방을 아는 것은 조직 내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해 미국은 조직원 상당수를 체포하고도 고급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그가 부상 등의 이유로 조직을 이끌지 못하고 죽은 듯 은신해 있기 때문에 정보망에 걸리지 않는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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