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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여행/평창 발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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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꽃 여행/평창 발왕산

입력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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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급의 유명한 산들을 제외하고 백두대간의 줄기 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그러나 정작 산 이름은 잘 모른다. 얼마나 높은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많이 찾느냐고? 우리나라 최초의 스키장인 용평스키장이 들어선 산이기 때문이다. 발왕산은 그렇게 제 이름보다 스키장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강원 평창군 도암면, 진부면, 강릉시 왕산면이 이 산의 능선에 들어간다. 해발 1,458m로 꽤 높다. 남한에서 10번째로 높은 산이다. 이곳 산기슭을 깎아 스키장을 만든 이유는 눈이 많이, 또 일찍 오기 때문이다. 겨울을 서둘러 맞고 싶으면 발왕산에 오르자. 그 곳은 이미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있다.원래 등산로가 있다. 그러나 등산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정상까지 편하게 오르는 길이 있다. 하늘길이다. 용평스키장 리조트타운에서부터 발왕산 정상까지 케이블카가 오르내린다. 편도 3.7㎞이다. 18분이 걸린다. 동양에서는 가장 길다고 한다. 산꾼들은 케이블카라면 질색하지만 어린 아이에게, 연로한 부모에게 아름다운 겨울을 소개하는 고마운 시설이다. 이 케이블카는 공간을 이동하는 것 뿐 아니라 시간도 이동한다. 일단 타보면 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런데 차갑지 않다. 비가 눈으로 바뀌는 것을 기대할 수 조차 없다. 내렸던 눈도 녹을 판이다.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 것 같다. 케이블카 승객을 관리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물었다. "산위에는 눈이 있을까요?" "어제 눈이 조금오긴 했는데, 글쎄요." 자신이 없다. 내친 걸음이니 돌이킬 수 없다. 8인승 캐빈에 덜렁 혼자 몸을 실었다.

케이블카는 마냥 위로만 오르는 것이 아니다. 능선의 높낮이에 따라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한다. 눈 아래로 펼쳐지는 모습은 설익은 겨울이다. 가랑비와 구름에 젖은 을씨년스러운 풍경이다. 이미 낙엽은 모두 졌다. 나뭇가지는 불쌍할 정도로 벌거벗었고 물기를 머금어 색깔이 더욱 처량하다.

케이블을 지탱하는 큰 기둥마다 해발고도를 적어 놓았다. 1200, 1300…. 그러나 하얀 겨울은 아직 없다. '헛걸음인가.' 내심 실망하는데 1,350m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깊은 골짜기에 눈의 자취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 더 오르니 하얀 나뭇가지가 보인다. 더 오르니 세상은 흑백이다. 주조는 하얀색, 바람의 반대편에 있는 나뭇가지만 검은 색이다. 저절로 입이 벌어진다.

정상에 도착했다. 케이블카에서 나왔다. 코끝으로 매운 찬바람이 스친다. 찬바람 속에 밀가루처럼 고운 눈이 날린다. 눈은 나뭇가지에 쌓이는 것이 아니다. 들러붙는다. 이슬이 나뭇가지에 얼어붙은 것(상고대) 같다. 살아 1,000년, 죽어 1,000년을 간다는 주목이 서 있다. 유령 같은 가지에 온통 눈이 덮히니 정말 유령 같다.

정상에는 20분 정도 산책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머리 위로 나무가 하늘을 가리는 터널과 같은 길이다. 여름에는 그늘길이다. 지금은 하얀 터널이다. 하얀 길에 사람들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생각보다 많다. '평일에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왔다 갔을까?'

궁금증은 곧 풀렸다. 길이 끝나는 넓은 평원에 울긋불긋 사람들이 몰려있다. 그런데 절반은 중국어를, 절반은 일본어를 한다. '외국 사람들이 이 산꼭대기까지 무슨 일인가?' 케이블카를 타기 전에 보았던 사진이 떠 올랐다. '겨울연가.' 이 곳은 드라마 '겨울연가'를촬영한 곳이다. 중국 관광객과 일본 관광객은 드라마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새삼 대중문화의 위력을 실감한다.

관광객은 거의 절반은 정신이 나간 표정이다. 눈 위에서 구르고, 뛰고, 깔깔대며 웃는다. 아무 거리낌없이 카메라를 건넨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사진을 찍어 달라는 뜻이겠지. 지금 이방인들은 그렇게 발왕산 꼭대기에서 겨울 연가를 찍고 있다.

/발왕산(평창)=글·사진 권오현기자 koh@hk.co.kr

등산로

케이블카를 타고 산에 오르는 것이 못 마땅하다면 직접 오르는 길이 있다. 두 가지이다. 첫 코스는 스키장 주차장에서 시작해 용산2리 새마을회관-능선-작은 광장-큰 광장-정상-능선고개를 거쳐 새마을 회관으로 다시 하산하는 길. 6시간 정도가 걸린다. 정상에서 스키장 골드코스 정상을 거쳐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은 4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아주 쉽다.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빠져서 우회전한다. 횡계 시내를 관통하는 길과 우회하는 길이 나온다. 우회도로를 이용하면 더 수월하다. 길의 끝에서 다시 우회전, 계속 진행하면 용평리조트에 닿는다. 이정표가 많이 세워져 있어 길 잃을 염려는 없다. 용평리조트는 입장료가 없다. 리조트에 진입해 포장도로의 끝까지 들어가면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곳이 나온다. 대인 1만원, 소인 7,000원이다. 스키장이 본격 개장되기 전까지는 케이블카 운행이 가변적이다. 반드시 확인을 해야 한다. 종합 제1매표소 (033)330-7423.

용평리조트(1588-0009)가 가장 큰 숙박시설이다. 스키 시즌이 본격화하면 방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1월 말까지는 여유가 있다. 인근에 민박, 펜션 등 숙박시설이 많다. 역시 스키 시즌에는 붐빈다. 동해안과 연계된 여행이라면 굳이 용평리조트 부근에서 묵을 이유가 없다. 겨울 동해안에는 빈방이 넘친다.

횡계는 인제군 용대리와 함께 우리나라 황태의 대표적인 생산지.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면 온통 황태덕장으로 덮인다. 생산도 하지만 요리도 낸다. 용대리 쪽의 황태요리가 강원도 특유의 밋밋한 맛을 유지하고 있다면 횡계의 황태요리는 많이 도시화했다. 황태회관(033-335-5796)이 유명하다. 황태찜이나 구이를 먹은 뒤 황태국으로 마무리를 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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