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04∼2013년 10년간 농업부문에 총 119조원을 투입하는 투융자계획을 발표하였다.어려운 재정여건 속에서도 투융자 규모를 매년 7.8%씩 늘리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일단 높게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정부 발표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다.
국민, 다시 말해 납세자들은 "왜 이렇게 천문학적인 투자를 농업부문에 쏟아 부어야 하는가?"라고 의아해 하는가 하면, 수혜자인 농민들은 "그게 그거지 뭐 별게 있나"라면서 시큰둥해 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119조원은 앞으로 10년간 농정수행을 위한 투융자사업예산을 조정하여 합한 수치일 뿐 특별히 기획된 사업을 위한 추가적인 농업투융자는 아니라는 사실인식이 필요하다. 지난 10년간(1992∼2001)의 농업투융자사업 규모는 총 76조 8,000억원이었다. 이런 농정 사업규모를 국가예산 증가율을 감안해 매년 일정률씩 증가시켜서 앞으로의 10년간 사업액을 합하면 119조원 규모가 된다.
이러한 농업투융자사업의 규모는 과연 엄청나게 많은 것인가. 만약 앞으로 10년간 국가예산 규모가 과거 10년간의 성장률(11.8%) 수준으로 증가한다면 농업투융자사업 규모는 3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국가예산 규모나 농림사업예산 규모를 전체 예산의 증가율보다 다소 낮춰 잡을 경우에는 지난 10년 합계치 보다 1.5배 증가에 그치는 119조원 규모의 투융자계획이 나오게 된다.
이 정도를 가지고서 정부가 농업위기에 대비해서 무슨 엄청난 새로운 투자사업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대통령 연설형식을 빌어 생색을 내고 크게 내세울 일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간접적인 농가소득지지방식(가격지지정책)을 직접적인 지지방식(소득직불제도)으로 획기적으로 바꾸고, 농촌개발정책과 복지정책을 강화하며, 평균농가를 대상으로 하였던 정책지원을 전업농 중심으로 전환하는 등의 시장지향적 정책선택의 불가피성을 농민과 국민에게 진솔하게 설득하는 것이 보다 성실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조정된 농업투융자사업 내용에서도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첫째, 과거 10년간 가격경쟁력 강화정책의 한계가 이미 뚜렷해진 만큼 앞으로의 투융자정책은 농산물의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을 향상시켜 수요를 개발·확대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농산물의 국제경쟁력은 가격경쟁력 뿐만 아니라 품질과 서비스 경쟁력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생산중심적이었던 농정의 관행을 수요중심적 정책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개혁의지가 여전히 뚜렷하지 않다.
둘째, 농업의 전 종목과 전 농가를 대상으로 수행되어왔던 평균적 농정을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입각하여 전업농 중심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개혁의지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정책지원 대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는 영세·노령 농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정책을 동시에 마련함으로써 농가들이 스스로 정책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차별화된 정책메뉴를 제시하는 것이 농가들의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대단히 긴요한 수순인데, 이러한 추진체계가 미흡하다.
셋째, 오늘날의 농업·농촌 위기는 농업경쟁력 강화를 스스로 추진할 수 있는 유능한 경영주체의 부족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2002년 현재 농림업 취업자 중에서 30세 미만의 청년층은 2.4%(5만명)에 불과한 반면에 은퇴를 앞둔 60세 이상의 노령층은 49%에 달한다. 열리고 있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농업부문을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경영자의 확보가 필수적인데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투융자계획이 소홀해 무척 아쉽다.
앞으로 발표될 예정인 농업·농촌대책에 이러한 문제점이 보완되어 '농업질서의 시장화혁명'을 성공적으로 연착륙시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성 진 근 충북대 교수·농업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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