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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빈곤의 굴레" 진지한 접근 돋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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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빈곤의 굴레" 진지한 접근 돋보여

입력
2003.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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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거쳐 우리에게 제시된 후보작은 두 편의 장편과 네 편의 단편이지만 그것들은 오늘의 우리 소설문학의 경향과 수준을 압축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사건과 자료에 대한 추적·재해석으로부터 인터넷으로도 그 소통이 불가능한 오늘의 쓸쓸한 삶에 대한 천착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정통의 리얼리즘 수법으로부터 발랄한 실험적 파격에 이르기까지 작품들은 높은 격을 유지하면서 그 주제와 방법에서 우리 문학의 다양성을 드러내주고 있다. 그러나 수상작은 한 편이어야 하고 심사위원들은 관점과 기호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런저런 작품 외적 정황도 참작하며 작품의 의미를 논의한 끝에 배수아의 장편소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으로 순조롭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작품이 제기하고 있는 '가난'의 진지한 문제성 때문이다.가난의 문제는 초창기의 근대 문학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집요하게 우리를 사로잡아온 주제였다. 그런데 빈곤을 몰라야 할 90년대의 작가 배수아가 이 가난이란 문제를 새삼 새로이 내세워 풍요감을 누리는 것으로 자만해 온 우리를 압박한다. 물론 그의 가난에 대한 관심은 가령 최서해처럼 굶주림의 체험에서 분출하는 저항도 아니고, 조세희가 불평등으로 왜곡된 구조적 모순을 폭로하는 분노와도 다르다. 그는 오히려 우연에 의해서든 자발적으로든 '가난을 누리는' 개인들이 고리를 이어 구조화한 이 사회의 근원적 타락을 담담하게 묘사한다. 인물에서 인물로 순환하는 고리로 이어지는 이 소설의 묘사에 의하면 우리는 돈이 있든 없든, 게으르든 집념으로든, 그리고 바로든 역으로든, 빈곤의 심리와 문화에 젖어 있다. 그것이 우리가 보이고 있는 비루와 아집의 부정적 인간상들인데 이럼으로써 가난은 풍요한 자본주의 사회의 어김없는 사생아적 자질임이 드러난다. 그 현상은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이지만 우리 삶의 현실적 뿌리를 파고들면 부닥치지 않을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각성을 재촉하는 것이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은 그래서 '가난의 현상학'이랄까 하는 의외의 무게를 지고 있는데 이 작품이 영원한 미숙아들의 부랑 세계를 그려온 여성 작가에 의해, 발랄한 문체와 느슨한 구성이라는 기왕의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진지한 열정 속에서 사회적 주제에 대한 도전적 의욕으로 씌어졌다는 점이 뜻밖이고 반갑다. 우리는 이 작가의 이번 수상이 새로운 조짐을 보이는 그의 문학에 더욱 깊고 넓어지는 계기로 덧붙여지기를 바란다.

/심사위원=김윤식 김병익 윤흥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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