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전영창 교장이 타계한 뒤 거창고에서는 잠시 분란이 생겼다. 전 교장 뒤를 이어 학교를 이끌어갈 교장으로 누가 적임자냐 하는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특히 전 교장이 학교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으면 '전 교장 죽은 지 3년이 못돼 학교는 문닫을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돌았기 때문에 후임 교장 선출은 학교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최종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는 고민에 휩싸였다. 후보자가 둘 떠올랐는데 누굴 선택해야 할 지 언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당시 교감이던 도재원 선생(현 교장)과 기획실장을 맡고있던 전성은 선생이었다. 이사회는 후임 교장선출에 있어 몇 가지 원칙을 세웠는데 일단 학교이념을 제대로 계승하기 위해 학교내부 인물 가운데 뽑고 사람의 능력과 품성을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 등이었다. 두번째 원칙은 후보자의 하나로 전성은 선생이 올랐기 때문인데 단지 학교에 전재산을 기부한 전영창 교장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뽑지는 않겠다는 이사회의 의지가 포함된 것이다.
두 사람은 학교이념을 가장 잘 알고 실천하며 성실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로서는 똑같이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러나 도 교감은 수학선생답게 모든 일에 꼼꼼한 편이었고 전 선생은 보다 활달하고 정치성향이 강해 성격은 판이하게 달랐다.
이사회는 최종결정을 앞두고 둘을 차례로 불렀다. 먼저 불려온 전 선생은 "저는 안됩니다. 아버님 생전부터 이 학교를 두고 전라도 학교니 가족학교니 하는 말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 학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십시오"라며 애원하듯 말했다. 뒤이어 이사회에 나타난 도교장은 "그렇다고 여론을 따라가면 어떡합니까. 여론은 3년이면 지나갑니다. 또 학교의 얼굴인 교장은 조직에 능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활달한 성격의 성은이가 교장에는 제격이고 저는 참모가 딱입니다"라고 사양하는 것이었다.
둘의 의견이 대부분 타당했기 때문에 이사회는 난감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이사진들은 "둘이서 결정해 알려달라"며 두 사람에게 결정을 일임했다. 3∼4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 두 사람은 전 선생이 교장을 맡고 교감은 도 선생이 하기로 결정했다고 우리에게 통보했고 우리는 그 결정을 그대로 따랐다.
후임 교장이 결정되자 이사회는 교육청에 교장 승인신청을 올렸다. 그런데 부교육감이 가족학교라는 이유로 결재서류를 반려했다는 말이 들렸다. 그런 와중에 부교육감이 시찰차 학교에 나타났다. 교문에서부터 교실건물까지 가는 동안 누구 한 사람 만날 수 없었던 부교육감은 청소부 아주머니를 만나 겨우 교장실을 찾았고 한참만에 교장을 만날 수 있었다. 부교육감의 방문에도 제 할 일을 다하고 들어선 교장은 학생들 이름을 줄줄이 외고 학교현황도 일사천리로 설명해냈다. 부교육감은 그 자리에서 전 교장 손을 덥석 잡으며 "내가 가족학교라는 선입견 때문에 잘못 생각했던 것 같소"라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교장승인 신청에 대한 확답을 듣기 위해 장기려 박사와 내가 교육청에 들르자 부교육감은 "왜 진작 그런 훌륭한 교육자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농담을 건네며 결재를 해줬다.
1990년부터는 도재원 선생이 교장을 맡았고 전 선생은 같은 재단 소속인 샛별중학교 교장에 취임했다. 한번씩 돌아가며 교장을 맡아 거창고의 교육이념을 재확인하고 새롭게 하자는 취지에서 자리를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각기 제 역할에 충실하며 거창고를 이끌어가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나는 믿는다. 나를 포함한 이사진은 단지 그들의 정신을 뒷받침하는 역할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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