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구깨나 취재한 기자들 사이에서 "이제 여러분도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말이 단연 화제다. 모 스포츠지 사진기자를 폭행하고 재물을 손괴한 혐의로 고소당한 김병현이 기자들을 향해 던진 이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수용여부를 떠나 김병현의 진의는 '변화'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스포츠지의 과도한 취재경쟁에 비춰볼 때 김병현의 요구는 일면 수긍이 간다.하지만 '변화'라는 말을 김병현에게 대입시켜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다.
김병현은 이번 사건 발생의 원천적인 이유가 언론이 수년전부터 자신을 '대인 기피증' '정신 이상자'로 몰아 간데서 비롯됐다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밝혔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데는 김병현의 책임도 적지 않다. 안면있는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댈 때도 번번이 줄행랑을 치거나 얼굴을 감추는 통에 기자들은 '기피증'이란 용어를 붙였다. 또 김병현이 미국에서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 할 때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도 좋겠다는 기자들의 충고를 정신병자로 몰았다고 해석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 고민거리나 머리가 아픈 일이 생기면 누구나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병현이 거두절미한 채 '정신병자'라는 어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김병현 자신도 변했나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피해자가 사과를 요구하자 김병현은 "합의나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사과한다면 내 죄를 인정하는 것 밖에 안된다. 사법부 판단에 따라 책임 여부를 결정짓겠다"며 사과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피고소인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두할 때에는 보기에도 민망했다. 적대감과 증오심이 역력했던 굳은 표정은 메이저리그를 휘젓는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이었다. 진실여부는 차차 가려지겠지만 김병현은 분명 가해자이다. 카메라가 부서졌고 피해자는 전치 4주의 진단을 받았다. 피해자가 자해를 하지 않은 이상 김병현의 폭력적인 행동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김병현이 사과를 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화'라는 말과 거리가 먼 태도이다.
기자들에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김병현이 먼저 변한 모습을 보였으면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을 잘못된 것이고 치료비도 물어주겠다고 선수를 쳤다면 보기에도 좋았을 것이다.
다행스런 것은 김병현이 조금씩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주 기자회견도중 "좀 더 성숙한 김병현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앞으로는 언론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고 모나지 않게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다"고 밝힌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잘한 일이다.
이번 사건이 화해와 합의로 일단락지어지길 바라면서 '야구선수' 김병현이 아니라 '자연인' 김병현의 진짜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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