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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삼성이 먼저 공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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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삼성이 먼저 공개하자

입력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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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1등 기업'이다.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액이 무려 137조원, 세전이익은 15조1,000억원이었다. 매출액은 내년 정부 예산 117조5,000억원(일반회계 기준) 보다 20조원 가량이 많다.이익은 지난해 전체 상장 기업이 거둔 이익의 61%를 차지한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08억4,600만 달러(13조152억원)로, 세계 100대 브랜드 가운데 25위다.외형 못지않게 삼성은 잘 짜여진 경영 시스템, 뛰어난 정보 수집력과 분석·예측력, 풍부한 인재 풀을 자랑한다. 삼성이 끊임없이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았던 일본 소니의 이데이 노부유키(出井伸之) 회장조차 임직원들에게 "삼성을 배우라"고 할 정도니, 삼성의 국내외적 위상을 실감케 한다.

그런 삼성이 지금 아주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SK 비자금 수사로 촉발된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계열사와 고위 임원들 명의로 정치권에 대선자금을 낸 사실이 공개됐다. 삼성은 적법절차에 따라 법이 정한 한도 만큼 지원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론은 해명을 그대로 믿으려 하지 않는 듯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이 '1등 기업'이기 때문이다. 재계 3위인 SK가 민주당에 25억원의 공식 대선자금을 줬고, 2위 LG가 20억원을 냈는데 어떻게 '1등 기업' 삼성이 고작 10억원을 낼 수 있느냐는 것이 상식적인 의문의 핵심이다. 그런 의문은 한나라당이 지난해 한 해 동안 삼성이 LG(30억원)보다 적은 20억원의 공식 후원금을 냈다고 밝히고 관련 임원이 출국금지된 사실이 알려지자 더 증폭되고 있다. 특히 임원 개인을 통한 대선자금 제공은 SK의 경우에서 보듯 편법적인 '우회 지원'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물론이고 LG 현대자동차 롯데 등 검찰의 사정권에 든 기업 치고 자신들이 정치권에 제공한 대선자금의 규모를 속시원히 털어놓은 기업은 아직 한 곳도 없다. 억울함을 호소하고 합법성을 강조하면서 '사면을 전제로 한 고해성사'를 주장하는 경제단체를 방패로 삼고 있다. 검찰이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신속히 수사하겠다"며 협조를 요청해도 요지부동이다. 더 나아가 채무연장이나 해외투자, 경영계획 수립이나 인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검찰을 원망하고 있다. 해외투자나 경영계획 수립 등은 어떤 일이 있어도 기업 스스로 이익을 쫓아 할 수 밖에 없고, 또 해야 할 일인데도 말이다.

기업들이 손길승 SK그룹 회장의 언급처럼 또다시 '정치권의 보복'을 두려워해 대선자금의 실체 규명을 외면한다면 검찰의 신속한 수사 종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어쩌면 검찰의 장기간 계좌추적과 관련자 조사를 통해 기업의 치명적 약점들이 검찰에 노출되는, 기업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상황이 그렇다면 '1등 기업' 삼성이 먼저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정치권의 압력성 요청에 정치자금과 대선자금을 지원했다면 누구의 요청으로 어떤 돈을 얼마나 줬는지, 불법적인 돈은 없었는지 전모를 공개해 기업들의 '고해성사 도미노 현상'을 일으키고 국민적 사면을 구해보면 어떨까. 더 나아가 앞으로 불법 정치자금을 요구하는 정치인은 이름을 공개하고 합법적인 정치자금이라도 낼 때마다 국민에게 내역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그러면 불법적인 정경유착의 사슬이 끊어지고 정치개혁의 첫 단추가 끼워지지 않을까.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에 '1등 기업' 삼성에게 요구되는 책무 아닐까.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는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단상(斷想)이다. 황 상 진 사회1부 차장대우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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