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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도대체 왜 15년간 가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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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도대체 왜 15년간 가뒀지?

입력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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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보이'식 화법을 빌어 감독과 배우에 대해 묻고 답하면 이렇게 된다."박찬욱의 감독으로서의 영화적 지향점은 흥행작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컬트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 있다고 평가된다. 그가 'B급 정서'를 마음껏 표현하며 동시에 대중을 포섭할 수 있을까?" "있다."

"최민식의 최고 연기는 '파이란'의 '강재' 역으로 평가된다. 그가 그의 전작을 넘어선 기가 막힌 연기를 또 다시 보일 수 있을까?" "있다."

영문도 모른 채 15년을 갇혀 있던 한 남자의 5일 간의 추적 복수극을 그린 '올드보이'는 매혹적인 잔혹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다. 15년 간의 '감금방' 생활을 빠르게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서 남자가 느꼈을 법한 분노, 우울, 체념, 그리고 도전을 탄력적 호흡으로 보여주고, 이어 5일 간의 추적극에는 미스터리의 박진감, 액션 영화의 경쾌함까지 곁들였다.

영화는 오대수(최민식)가 자신을 가둔 이우진(유지태)을 예상보다 빨리 만나는 설정으로 관객의 허를 찌른다. 단순한 추적극의 템포를 깨는 방식은 이 영화가 뭔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음을, '누구'가 아니라 '왜'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뜻한다.

"나 오대수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산다고 해서 오, 대, 수라구요."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는 한심한 취객 오대수는 아이에게 "곧 간다"는 말을 남긴 채 납치돼 어느 건물의 7.5층에 위치한 사설 감금방에 15년 간 갇힌다. TV를 보며 잡식 박사가 되고, 민혜경의 '보고싶은 얼굴'을 보며 자위를 하고, 복수를 꿈꾸며 주먹을 연마한다. 젓가락 한 짝으로 벽에 구멍을 뚫어 탈출을 꿈꾸던 어느날, 그는 커다란 가방에 넣어져 납치됐던 바로 그 자리에 던져진다. 15년 간 먹었던 군만두와 찢어진 젓가락 봉지에 인쇄된 '청룡'이라는 단어를 힌트로 '누구'인지를 찾아 나선다. 그는 우연히 찾아간 일식 집에서 감금방에서 본 TV 프로에 소개됐던 보조 요리사 미도(강혜정)에게 친밀함을 느끼고, 미도 역시 낙지를 먹다가 쓰러진 그에게 묘하게 끌려 그의 추적극에 동참한다.

자신을 아내 살해범으로 조작한 그, 자신을 15년이나 가두었던 이우진은 오대수가 조금만 더 고생하면 그를 찾아낼 바로 그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오대수는 결코 그를 죽일 수 없다. 인공 심장 박동기를 단 이우진은 스스로 리모컨을 조작해 자살할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왜'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적을 잡아놓고 구구절절 이유를 캐묻다가, 때로는 훈계를 하다가 역습을 당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서부 영화의 관습을 감독은 이 영화의 전개 방식으로 끌어 왔다. 이우진이 말하는 단서는 하나다. "넌 말이 너무 많아." 대체 무엇을 말한 것일까.

위트와 유머, 폭력과 잔혹을 같은 비율로 조합해 그것이 삶이라고 말하는 박찬욱 감독의 세계관, 주정뱅이에서 처절한 복수의 화신이 된 최민식과 고급스럽고도 차가운 복수를 꿈꾸는 유지태의 연기 앙상블, 그리고 핏빛이 아닌 보랏빛으로 물들인 화면은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힘들 새로운 복수극의 구성 요소가 됐다. '복수는 나의 것'이 비장한 독백이었다면, '올드보이'는 귓전에 속삭이는 악마의 음성처럼 달콤하고 더 위험하다. 21일 개봉. 18세 관람가.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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